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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아마추어 칼럼

리니지M 시대 끝내려면 주4일제 도입해야

  2021년 모바일 MMORPG 빅3로 기대받았던 '트릭스터M', '제2의나라', '오딘 : 발할라 라이징'이 상업적인 면에서 대성공을 이뤘다. 게이머들은 양산형 모바일 게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위 세 게임의 흥행에 대해 체념하는 분위기다. 중·장년 게이머들이 '리니지라이크' 게임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과금하고, 게임사가 이들의 니즈를 반영한 게임을 제작하는 순환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3040 유저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니, 이들의 여가시간이 늘어난다면 문제점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 2018년 이후로 자취 감춘 빅3, 3년 만에 모바일로

  MMORPG 빅3가 오랜만에 나란히 흥행에 성공했다. 2010년대 초반의 기대작이었던 테라와 블레이드 앤 소울, 그리고 아키에이지 이후 약 10년 만의 성과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지난 10년은 한국 RPG계의 암흑기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 들어서는 블레스와 검은사막, 이카루스가 큰 기대를 받았으나 검은사막을 제외한 두 게임은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블레스는 한때 한스 짐머가 게임 OST를 제작했다는 소식으로 작은 관심을 끌었지만 오픈 이후 철저한 무관심 속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카루스는 오픈 전 높여놓았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넥슨에서 MMORPG 게임 3개(메이플스토리2, 트리 오브 세이비어, 수신학교 아르피엘)를 발표했다. 국민 RPG 메이플스토리의 정통 후속작으로 기대를 끌었던 메이플스토리2는 잦은 사건 사고와 운영 미숙 끝에 호흡기만 붙어있는 게임이 되었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정신적 계승작 취급을 받았던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오픈 초기 무수한 버그가 터지며 게이머들에게 매우 나쁜 인상을 남겼고, 끝내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추억의 게임 마법학교 아르피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수신학원 아르피엘은 별다른 추억도 남기지 못한 채 서비스를 종료했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로스트 아크와 리니지 이터널, 그리고 뮤 레전드가 새로운 빅3로 주목받았다. 리니지 이터널은 5년이 넘는 개발 기간 끝에 프로젝트 자체가 엎어지고 말았다. 뮤 레전드는 아무런 반향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2019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로스트 아크만이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이나, 이 또한 올해 초 메이플스토리 등의 게임에서 유저들이 이탈한 반사이익을 봤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지켜봐야 한다. 한편 창세기전4, 엘리온 등은 '반짝'조차 하지 못하고 잊혀졌다.

  그러니 올해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 빅3의 대성공은 큰 의의를 갖는 것이다. 평균 일 매출액 10억 원을 달성하고, 서비스 오픈 직후 열흘간 누적 매출만 200억 원을 훌쩍 뛰어넘고, 첫날부터 70억 매출 잭팟을 터뜨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소식인 것이다. 심지어, 그 세 게임 모두 '리니지라이크' '모바일' 게임이기에 더욱 무시무시한 교훈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사실상 '리니지 3'이었던 빅3, 매출 면에서는 대성공

트릭스터M은 그래픽만 다를 뿐 리니지M을 그대로 따라한 게임이었고, 오딘 : 발할라 라이징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게임은 나란히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2021년 모바일 MMORPG 빅3가 갓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의 평가, 그리고 매출액에 대해서 자세히 짚어보자. 지난 5월 20일에 세 게임 중 처음으로 베일을 벗었던 트릭스터M은 오픈 직후 앱스토어에서 1점대 평점으로 혹평받았다. 추억 속의 모바일 게임 트릭스터는 없었고 트릭스터의 거죽을 뒤집어쓴 리니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BM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게임 용어까지 리니지M과 판박이였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기획팀에서 리니지가 완벽한 게임이니 숫자 하나도 건드리지 말고 옮겨놓아라고 지시했다'는 개발자의 폭로가 올라오기도 했다. 게이머들의 분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리고 트릭스터M은 오픈 직후 2주간 평균 일 매출액 10억 원을 기록했다.

  제2의나라는 오픈 전 지브리풍의 동화 같은 그래픽과 미려한 OST로 주목받았으나, 서비스 오픈 후 넷마블의 전작 리니지 2 레볼루션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존의 양산형 모바일 게임과 나름대로의 차별화된 점을 만들어 놓았지만, 본질은 자동사냥으로 시작해 과금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제2의나라는 한국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리니지M과 리니지2M을 제치고 매출 1위에 올라섰다. 6월 29일에 정식 출시된 오딘 : 발할라 라이징은 'NC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리니지M 시리즈의 과금을 오마주했다. 북유럽풍 리니지M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든 말든 한국 출시 첫 이틀간 150억 원 내외의 판매액을 올렸다.

 

  모바일 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의 그래픽에 따르면, 현재까지 오딘 : 발할라 라이징을 플레이하는 유저층의 28.8%가 20대다. 이들이 어린 시절 PC 버전 리니지를 플레이하며 리니지와 관련된 추억을 쌓아온 린저씨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리니지라이크 모바일 게임은 3040 '린저씨'들만 플레이한다고 생각했던 게이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게임 생태계를 망가뜨린다고 지적해왔던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은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취향 저격' 게임으로서 자리 잡은 것일까? 그렇기에 2017년의 리니지M부터 시작해 2021년의 오딘 : 발할라 라이징까지, 리니지와 같은 과금 구조를 가져온 모바일 게임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 그들은 3040이 되었고 게임할 시간이 없다

게임사 또한 자신들의 고객이 '게이머'가 아닌 '게임할 시간이 없는 직장인'임을 알고 있다. (이미지 : NC 공식 유튜브 갈무리)

  그렇지 않다. 트릭스터M은 리니지를 똑같이 베낀 게으른 게임성으로도 충분히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지만, 한편으로는 '린저씨가 아닌 게이머'들이 리니지의 게임성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작년 말 트릭스터M 발표회 당시, 엔트리브 대표를 겸임하고 있던 엔씨소프트 이성구 총괄 프로듀서는 '귀여운 리니지를 만들었다'며 "저연령 유저에게 리니지가 가진 '쟁'의 맛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좋은 사냥터와 필드 보스 몬스터를 독식하기 위해 유저들끼리 경쟁하는 '전쟁'의 재미와 강한 스펙으로써 좋은 필드맵을 독점하는 '통제'의 재미를 잠재 고객층에게 어필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리니지M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겨 담은 '귀여운 리니지' 트릭스터M은 잠재 고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다. 결국 트릭스터M은 게임에서 가장 하찮으면서도 중요한 존재인 '과금 유저들의 심리적 만족을 불러일으킬' 라이트 유저들이 빠르게 이탈했다. 프롤레타리아트 없는 부르주아가 존재할 수 없듯 통제할 대상이 없는 군주도 있을 수 없었다. 서비스 오픈일 당시 30만 명을 넘겼던 트릭스터M의 일간 이용자 수는 한 달 뒤 1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무대를 평정했던 리니지2M이 해외에서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NC소프트는 지난 3월 24일 일본과 대만에 리니지2M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출시 직후 일본 무료 순위 40위와 매출 순위 15위에 머무르는 등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으며, 한 달 뒤인 4월 20일에는 일본 앱스토어 매출 순위 96위까지 추락했다. 리니지2M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전할 것이라던 증권가의 전망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한편 펄어비스의 검은사막과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는 일본 시장 진출 직후 흥행몰이를 했다.

 

  오딘 : 발할라 라이징이 아닌 다른 리니지류 모바일 게임들의 이용자 연령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2019년 12월 4일 분석에 따르면 리니지2M 이용자의 7할 이상(73.43%)은 30~40대였으며, 과반수 이상(74.55%)이 남성이었다. 리니지M도 마찬가지로 3040 게이머가 즐겨 플레이했다. <모바일 인덱스>에 따르면 2019년 4월 기준 리니지M 이용자의 56.9%가 30대였으며, 16.5%가 40대였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현재까지 오딘 : 발할라 라이징을 플레이한 게이머 중 3할에 가까운 이들이 20대였다. 하지만 10대 게이머의 비율은 4.04%에 그쳤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열아홉 수험생 시절까지 오딘 같은 모바일 MMORPG에는 관심도 갖지 않았던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기만 하면 '린저씨'가 되어 리니지류 게임에 열광한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20대 사이에서도 시간적 여유가 많은 대학생이나 경제적 의존처가 있는 무직 백수 등이 있고, PC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는 군인과 갓 취직해 심신의 여유가 부족한 사회인이 있다. 대학생과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무직자는 10대 학생들과 결을 같이 한다.

  2019년 12월 기준 리니지2M 이용자의 15.82%는 20대였지만 10대 유저는 1.46%에 불과했다. 2019년 4월 기준 리니지M의 20대 유저는 2할에 육박했으나(19.1%), 10대는 1%도 못 미쳤다(0.8%). 모두 오딘 : 발할라 라이징과 비슷한 비율이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오딘 : 발할라 라이징의 20대 게이머 28.8%라는 수치는 결코 '리니지라이크' 모바일 게임이 청년들에게 통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리니지M류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부족한 시간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국가지표체계)

  넷마블은 제2의나라를 출시하기 전 해당 게임의 킬링 컨텐츠 중 하나로 AI(인공지능) 모드를 적극 홍보했다. 박범진 넷마블네오 개발총괄은 AI 모드에 대해 "플레이어가 게임에 접속해 있지 않아도 서버의 로직이 캐릭터 AI를 제어해, 서버 내에서 움직이게끔 구현했다"고 말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게임에 접속해 있지 않아도 자동사냥을 통해 캐릭터의 스펙을 올릴 수 있고, 인공지능을 적용했기에 타사 게임의 비접속 자동사냥보다 효율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리니지M은 2020년 상반기에 무접속 플레이 모드를 신규 콘텐츠로 추가했다. 심승보 NC소프트 전무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를 발표하며 "하루 24시간 동안 게임을 위해 모바일 기기를 볼 수 없다. 시간적 제약을 풀기 위해 무접속 플레이 기능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트릭스터M, 제2의나라, 그리고 오딘 : 발할라 라이징 세 게임 모두 '절전모드'라는 기능이 존재한다. 유저가 조작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절전모드로 전환되며, 게임 화면 대신 검정색 배경이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기능이다. 이때 게임은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지 않을 뿐, 자동사냥과 전리품 획득은 계속된다. 일반적인 게이머를 위한 기능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절전모드를 지원하는 검은사막 모바일의 한 이용자는 "일할 때 절전모드로 돌려놓으면 다들 내가 게임을 하는 줄 모른다"며 "직장인에게는 절전모드가 정말 꿀이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공개한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은 4.2시간으로 평일 여기시간은 3.7시간이었으며 휴일 여가 시간은 5.6시간이었다. 이는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며, 노르웨이·핀란드·독일·이탈리아 등의 국가에 비하면 크게 낮았다. 이들 국가의 여가 시간비율은 22%를 넘었다(한국 17.9%). 3040의 여가 시간은 평균보다 더 적었다. 30대의 평일 여가 시간은 3.1시간이었으며, 40대의 평일 여가 시간은 3.2시간이었다.

 

  한국에 PC방 열풍이 들이닥쳤던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온라인의 시대'가 열린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게임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리니지·바람의나라 같은 MMORPG였다. 그들은 이제 3040이 되었고, 예전과 같이 게임에 시간을 쏟아부을 여력이 없다. 돈으로 시간을 사야만 한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는 대신 자동사냥을 돌려야 하고, 과금으로써 다른 이들을 앞질러야 한다.

 

#. 주4일 근무제, 한국 게임 생태계 바꿀 해답 중 하나?

(이미지 출처 : 에듀윌)

  AAA급 PC 게임이 나와도 3040 게이머들은 그 게임을 즐길 시간이 없다. 그러니 자꾸만 휴대전화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소싯적에는 건드리지도 않았을 자동사냥 모바일 게임을 설치하고, 자신의 경제력을 해당 게임에 투자함으로써 한국 게임 생태계를 고착화시킨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게임 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하나의 해답 아닐까?

  2004, 근로기준법이 개정됨에 따라 법정 노동시간이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축소되었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2018년에는 최대 노동시간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무수한 반대를 뚫고 입법 처리해 노동시간을 단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지구에서 손꼽히게 긴 시간을 일하는 데 쏟아붓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대한민국의 임금노동자 연간 노동시간은 1967시간으로, 국제 평균인 1726시간을 아득히 웃돌고 있다. OECD 회원국 37개국 중 멕시코(2137시간) 다음으로 긴 2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90%에 달하는 직장인들이 지금보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에 찬성한다. 현재와 같은 강도의 노동으로는 자신만의 여가시간은 물론, 병원에 가서 자기 몸을 돌볼 여유조차 없기 때문이다(2021430일 잡코리아&알바몬 설문 조사 결과). 4일제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4월부터 격주로 주4일제를 실시 중이다. 우아한형제들은 2015년부터 주4.5일 근무를, SK그룹은 2019년부터 주24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저질 모바일 게임, 이제 정말 그만 보고 싶다...

  지난 몇 년간 너무나도 많은 국산 모바일 게임들이 게이머들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지갑 싸움에서 '린저씨'들을 이길 수 없는 게이머들은 그들의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숨죽여 지나가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장인이 되고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됨에 따라 시간이 사라진 이들이 끊임없이 모바일 게임 시장에 유입된다. 그들은 부족한 시간을 돈으로써 사고, '리니지라이크' 모바일 게임 시장에 윤활유를 붓는다.

  그러니 노동 시간의 감소가 하나의 해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적어보았다. 어떠한 방식으로 이 리니지M의 시대가 끝날지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