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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노트

우리 모두가 디지털 소외자다

디지털 소외는 일부 소외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를 막론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문제다. 단지 우리가 피해 당사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의 95%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다. 영·유아들은 지상파 채널의 아동용 프로그램이나 그림 동화책을 보는 대신 유튜브 키즈 영상을 본다. 이제 학부모들은 TV 프로그램보다 유튜브나 틱톡의 유해한 영상을 더 걱정한다. 청소년은 매월 100억 분이 넘는 시간을 뉴미디어 플랫폼 시청에 쓴다고 한다. 식당에 가서도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를 다룰줄 알아야만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시킬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디지털화’가 일상에 스며들면서 디지털 소외 현상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1월 28일부터 키오스크 서비스 제공 시 장애인 차별 금지를 명시한 법이 시행됐다. 법에 따르면 키오스크 운영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계에서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28일 이전에 설치된 키오스크에 대해서는 3년간 적용이 유예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디지털 소외 계층은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해 소외되는 집단을 뜻한다. 디지털 소외의 주체를 기존에 존재했던 사회적 약자로 한정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회 전반에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 모두가 디지털 소외자가 될 수 있다.

 

 

언택트 시대, 디지털화로 교육에서 소외된 학생들

코로나19 팬데믹은 학생들의 집을 교실이자 급식실,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충분한 환경이었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사진 출처 : 시사IN)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의 집은 교실이자 급식실, 운동장이 됐다. 학교 문이 닫히고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이 실시됐다. 원격 수업이 공교육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부모의 소득 격차가 학생의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현상이 심해졌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똑같은 칠판을 바라봤었지만 원격 수업 환경에서 어떤 학생은 고사양 노트북로 또 어떤 학생들은 구형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듣게 됐다. 취재에 응한 사회복지사 A씨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는 디지털 아예 기기가 없거나 인터넷을 원활히 이용할 여건이 안 되는 가정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대학생 멘토를 장애 아동의 가정에 파견해 공부를 도와주는 사업을 했어요. 지난 2년 동안에는 화상 통화로 해당 사업을 했는데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기기나 인터넷 문제로 화상 회의 프로그램의 설치 자체가 불가능한 가정이 많았고, 스마트폰 조작이 미숙해 화상 회의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학원 보조 강사로 일하는 사범대학생 B씨의 설명이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2월에 실시했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초·중·고 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구 중 72.3%가 원격수업으로 인해 교육 격차가 커졌다고 답했다. 실제로 지난 2월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가 <시사IN>을 통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비대면 수업을 오래 실시한 학교일수록 주요 과목(국어·수학·영어)의 중위권 학생 비율이 줄고 상·하위권 학생의 비율이 늘어났다. 2020년 12월 박미희 경기도교육연구원 전문연구원의 연구에서는 가정 형편이 나쁠수록 온라인 수업 시 사용하는 디지털기기가 낡아 방해를 받거나 온라인 수업 참여 시 인터넷 속도가 느려 어려움을 겪은 학생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코인’ 투자 실패, 오롯이 ‘개인’의 탓일까?

 

디지털 소외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대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금융의 디지털화는 무수한 금융 피해를 야기했다. 제4차 산업 혁명을 대표하는 블록체인 시장에서는 정보의 절대적 불균형 속에서 코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디지털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디지털 소외 계층’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걸까?

 

 

(사진 출처 : 개인 카카오톡 채팅방 캡쳐)

#1. 지난여름 육군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던 A씨는 월급으로 1년 가까이 모은 500만원 전부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니 내가 돈을 안 빼면 코인 가치가 떨어져도 잃는 구조가 아니더라. 언젠가는 결국 오른다길래 ‘돈이 복사가 되는구나’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고, 500만원은 순식간에 14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괜찮은 코인’을 찾아 필사적으로 발품을 판 끝에 겨우 본전을 챙겨 나왔지만 주변인들에게 자랑하지는 않았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보를 찾는 일이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가상화폐 분석 영상이나 ‘코인 인플루언서’의 트윗이 그나마 참고할 만한 자료였다. 금전적으로 손해는 안 봤지만 정신적 피해가 컸다.”

#2. 20대 중반의 B씨는 지난 겨울부터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에 올라오는 각종 정보를 취합해 보니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 상하차장에서 일한 뒤 집에 돌아와 <삼프로TV> 등의 경제 유튜브를 시청하며 열심히 ‘경제 공부’를 했고, 피땀 흘려 받은 월급은 모조리 코인 구매에 사용했다. 처음 택배 상자를 옮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4000만 원을 웃돌던 그래프는 날이 풀림과 함께 완만히 하향 곡선을 그렸다. 낙담한 B씨는 몇 개월 전 현역 입대했다.

지난 몇 년간 제4차 산업 혁명의 흐름 속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분야 중 하나는 가상화폐 시장이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가상화폐가 저점이었던 시기에 반 장난으로, 혹은 선견지명(?)을 갖고 비트코인 등을 구매해 ‘대박’이 난 투자자들의 사례가 인터넷과 뉴미디어를 통해 자주 노출됐다. 작년과 재작년 들어서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지금 코인 판에 뛰어들지 않으면 바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2021년 2분기에 가상자산 거래소 신규 계좌를 개설한 20대와 30대가 182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영혼까지 끌어모은 돈’을 한 번에 날려버린 이들의 사례가 속출했다. 몇 달 치 알바비를 대학생은 안타까움의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의 대참사였다.

 

투자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가상 화폐 시장 자체의 구조적 문제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재무제표 등을 통해 투자할 기업의 정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주식과 달리, 가상화폐 시장은 투자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각 거래소마다 제공하는 ‘백서’가 특정 가상화폐가 무엇을 위해 개발됐고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등의 정보가 담겨있어 재무제표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국내 거래소임에도 한글 백서를 지원하지 않거나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머니투데이>, <아시아경제>). 백서에 기재된 내용이 법적 효력을 갖지도 않기 때문에 발행사에서 허위 정보를 적거나 백서대로의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하지 않을 위험성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부 대주주가 정보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그리고 ‘리딩방’에서 나오는 불확실한 정보에 기대는 정보 격차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국내 게임 회사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한 가상 화폐 위믹스(WEMIX)를 공시 없이 대량 매도하며 촉발된 ‘위믹스 사태’, 발행사가 자사의 가상화폐를 직접 사고팔며 시세를 조작한 ‘김치코인 사태’ 등 정보의 불투명성을 악용한 불공정거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코인판’에 뛰어든 대다수의 대중은 정보의 불균형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가상 화폐 시장에서 소외됐던 것이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개인 투자자의 가상 화폐 시장 소외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것 또한 어렵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1월 <동아일보>를 통해 “가상화폐 시장은 자본시장과 달리 시세 조종 등 불공정 거래를 감독하거나 규제할 수단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금융의 디지털화가 낳은 소외자들

포털 사이트에 '대출' 키워드 검색 시 최상단에 노출되는 대출 중개 사이트. 이제 대부업체들은 길거리에 전단지를 뿌리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정부와 기업이 사각지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금융의 디지털화는 다양한 금융 범죄와 사금융의 디지털화 또한 낳았다. 온라인 뱅킹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인터넷 은행의 허점을 파고든 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골목길의 낡은 벽 대신 모두의 모니터에 달라붙은 대출 광고는 돈이 급한 서민들을 사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에 의하면 2021년 인터넷 은행의 사기 이용 계좌는 2017년의 355건에서 3128건으로 9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해 상반기 메신저 사기 피해액은 466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배 불어났으며, 심지어 인터넷 뱅킹에 가장 능숙한 20·30대를 타깃으로 삼은 사기도 존재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의하면 은행 비대면 계좌 관련 민원 건수는 2016년 106건에서 2021년 414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으며, 은행 명의도용 관련 민원 건수도 2016년 122건에서 2021년 298건으로 증가했다.

 

최근 들어 보편화된 비대면 금융의 허점을 이용한 범죄가 많았다. 문자메시지 본인인증, 주민등록증 사진 확인이면 본인인증이 가능한 허술한 확인 절차가 범죄의 타깃이 된 것이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금융기관들은 현 본인인증 절차·기술의 취약점과 이로 인한 피해 규모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고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으로 진출한 대부업체에 의한 피해도 많아졌다. 포털 사이트에 ‘대출’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신속 대출’, ‘비대면 대출’을 강조하는 수많은 사이트가 최상단에 노출된다. 수많은 대부 중개 사이트는 이용자가 업체를 골라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불법 사금융 업체가 경제적으로 급한 이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대출 희망자로 하여금 ‘개인 정보 수집 및 이용’과 ‘개인정보 제3자 제공’에 반드시 동의하도록 강요하거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했으며, 이를 불법 사금융업체가 열람했기 때문이었다.

 

유튜브 광고 등을 통해 정부를 사칭한 대부 업체의 사례도 있었다. <일요시사>에 따르면 2022년 9월 현재까지도 업체의 이름은 교묘히 숨긴 채 '긴급 생활 지원금', '긴급 생계 대출' 같은 키워드를 달아놓아, 사이트 이용자로 하여금 정부 지원 대출과 혼동하게 만드는 사례가 다수 존재했다. '국민채무통합'이라는 광고를 보고 대출 상담을 받았더니 실제로는 사금융과 연결해주는 대출 중개 업체거나 '카드론', '핸드폰 깡'을 유도하는 식이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상담 건수는 14만 3907건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한 '역대 최고' 수치였다.

 

대부업체의 수법은 금융의 디지털화와 함께 발달했는데 정부의 감시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시사IN>에 따르면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대부 중개 사이트에 대해 “법적으로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에 규제와 감독이 어렵다”며 현실적으로 이러한 사이트를 단속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를 사칭한 대부업체의 광고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등에 노출되는 정부 사칭 대출 광고에 대해서도 문제가 심해지자 사전 심의 제도가 도입됐지만, 업체가 심의를 요청한 경우에만 진행된다. <헤럴드 경제>에 의하면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대부금융협회가 심의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검사하는 정도의 역할만 수행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가 디지털 소외자다

동화책보다 유튜브 키즈에 익숙한 어린이의 모습이 당연한 '디지털 시대'다. 동시에 이 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디지털 소외'를 경험시키고 있다.

디지털 소외 현상은 기존 사회적 약자들만이 겪는 현상이 아니다.  화폐의 디지털화 속에서 정보의 비대칭으로 판단이 불가능했던 개인 투자자, 비대면 교육 환경에서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해 학습에서 소외된 학생, 금융 디지털화 속에서 고리대금 업체에 속아 넘어갔거나 인터넷 뱅킹의 허점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 전부가 디지털 소외자다. 혹은 우리 모두가 잠재적 디지털 소외 계층이다.

 

제4차 산업 혁명을 이끌고 있는 정부와 기업은 디지털 소외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기술 발전으로 편익을 누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무시할 순 없지만 이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소외될 사람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더 귀기울여야 한다.

 

디지털 소외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책보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이 더 익숙한 학생, 업무부터 휴식까지 모든 시간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직장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쩔쩔매는 백발노인, 키오스크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장애인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공통된 담론으로써 해결해 나가야 할 사안이다.


 

미디어 액티비즘 스쿨(MAS)

좋은 저널리스트/크리에이터/활동가를 꿈꾸는 분들을 위한 교육과 멘토링

medianoon.notion.site

※ 미디어눈이 주최하고 노무현재단이 후원하여 진행한 시민 저널리즘/미디어활동가 교육 프로그램인 미디어 액티비즘 스쿨 1기에 참여하여 작성한 실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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