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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2018.06.06 고척 넥센 - 두산전 답답했던 직관 후기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던 이용찬을 탈탈 털었다. 지난 잠실 두산 3연전의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는 듯했다. 오늘 상대팀 선발투수는 7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었던 유희관이었고, 우리팀 선발투수는 최근에 약간 부진했지만 어쨌든 토종 에이스 노릇을 해주고 있는 최원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벨붕이었다. 맘편히 야구나 볼 시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직관은 공휴일을 기분 좋게 보내도록 해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는 야구공은 둥글며, 어제 넥센이 이용찬을 털었듯이 최원태도 털릴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었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불안한 징조가 있었다. 경기가 시작하기 약 두 시간 전에 오늘 같이 경기를 볼 야빠 지인과 만났고, 지하 푸드코트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경기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약 1년 반만에 온 쿰척돔 지하 푸드코트는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 되어 있었다. 넓디넓은 지하 상가에 부대찌개집, 샌드위치집, 치킨집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서울시와의 운영 관련 문제때문에 이런 꼴이 된 듯하던데, 참...





같이 경기를 보러 온 지인이 지방 사람이라서 이왕 고척돔에 온 거, 내야석에서 보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공휴일이라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와서(오늘 거의 매진 수준이던데 맞음?) 결국 두 자리 연속으로 붙어있는 곳을 찾다보니 외야석에서 경기를 보게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초이스가 우익수 수비위치로 달려나가자, 내 뒤에 앉아계셨던 아재가 초이스를 우렁차게 연호하며 자기 자녀분들에게도 초이스 이름을 외치라고, 사인볼좀 던져달라 하라고 하셨다. '아드님 따님이랑 함께 오순도순 직관 온 분이시구나'했는데... 엥?! 김재환이 선제 투런포를 치자 엄청 좋아하시는 게 아니겠는가? 그제서야 뒤를 슬쩍 돌아봤는데, 알고보니 두산팬이셨다... 이후에도 이 아재는 두산 수비 때에는 조수행의 이름을 외치는 등 자신을 엄청 어필하셨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외야수들이 이쪽으로 공을 던져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회말, 무사 1,2루. 타석에 김하성이 들어서자, 같이 야구를 보러 간 지인이 와~~~! 하성이다~~~~! 하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김하성은 번트를 대다가 파울 플라이로 허무하게 아웃당했다. 그 다음에 박병호가 나왔을때도 박뱅~~~! 너무 좋아♥ 하고 좋아했는데 박병호는 그러든 말든 병살을 쳐버렸다.





2회초. 최원태의 투구를 보다못해, 치킨을 사러 밖으로 나왔다. 외야석쪽 매점들을 쭈욱 들러보던 도중, 복도 한켠에 싱글즈 잡지가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고 낼름 집어왔다.





오늘의 야구장 간식은 투다리 양념 강정! 가격은 만 칠천원! 맛은 있었지만, 너무 비쌌다... 고척 스카이돔은 입장료 뿐만이 아니라 간식들도 값이 비싼 것 같다ㅠ





4회초. 최원태가 지난 3이닝동안 50구를 던져 5실점을 한 것을 보며 '이대로 가면 6이닝 100구 10실점도 가능하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그럴 기세로 투구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현기증이 나는 투구내용을 보여준 끝에 박병호의 도움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데에 성공했다. 

오늘 최원태의 피칭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던 것일까? 아시안게임 대표팀 기술위원회에 자신의 실력으로는 아직 국가대표팀 승선은 과분한 것임을 무력으로써 과시한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묵묵히 에이스 노릇을 해왔으니, 한 경기 정도는 신나게 깽판을 벌여보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이든간에 참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5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송성문선수가 2루타를 치고 나갔다! '무사 주자 2루 찬스는 좋지만, 과연 조툐상이 이 찬스를 살릴 수 있을까?'하며 걱정했는데, 대타로 임병욱이 나오길래 모든 넥센팬들이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시원하게 배트를 휘두르며 헛스윙 삼진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겆빠들이 '군대나 가버렸으면...'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 순간만큼은 그랬었다. 





최원태가 강판된 이후, 7회까지는 양현과 김동준이 멋진 활약을 펼친 덕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넥센의 수비이닝을 지켜보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너무나도 편안한 투구 덕에 조금은 졸릴 정도였다. 그래서 닭강정을 사러 나갔을 때 가져온 싱글즈 잡지를 읽었다. 박철영 코치님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프로 나가면 잘 되실 것 같다..





평화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고, 또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8회부터는 다시 겆통을 받기 시작했다. 두산이 다시 한 점 더 도망간 것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박병호가 나를 너무나도 속상하게 만들었다. 


티라노 타법은 어디에다가 팔아먹은 건지 몸쪽 공은 온 몸을 다 비틀어가며 피하기 일쑤에다가 수비도 내가 알던 그 박병호가 아니고, 꼭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만 타석에 들어서면서 결과는 맥아리 없는 땅볼이니... 얼마 전부터 내가 알던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박뱅를 보며, 대체 무엇이 무엇인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혹시, 아직도 몸이 많이 불편한 걸까?



9회. 조덕길이 올라왔다. 같이 야구보러 온 지인이 조덕길은 어떤 투수이냐길래, 우리가 지금 당장 고척돔을 나가도 될 투수라고 소개해줬다. 외모만 봤을 때에는 상당히 젊어보인다길래 1989년생임을 알려줬더니, 짧은 탄식을 했다.. 정진호에게 안타를 얻어맞는 모습을 보면서 황덕균이 돌아와서 던져도 이것보다는 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무실점으로 막는 걸 보며 기대를 하게 되었다. 투수진의 구멍을 적절히 메워주는 투수로 커주길...





9회말. 선두타자 초이스가 사구를 맞자, 방망이를 집어던지는 등 외야에서 봐도 매우 화가난 것이 느껴지는 시늉을 보였다. 이러한 리액션에 지레 겁을 먹어버린 것일까? 이후 박치국이 송성문, 고종욱에게 안타를 얻어맞으면서 넥센은 9회말 무사만루라는 전대미문의 찬스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대타 이택근이 아쉽게 희생 땅볼로 물러가고, 대타 김민성이 "역시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돌고돌아 타순은 선두타자 이정후에게로 돌아갔고, 투스트라이크까지 간 이후에는 두산팬들은 삼진을, 넥센팬들은 홈런을 외쳐댔다. 응원을 주도하는 사람이 경기장에 아무도 없어서였을까. 고척돔을 꽉 채운 관중들이 무질서하게 삼진과 홈런을 외쳐대는 소리가 섞여, 그 순간의 고척돔은 마치 시장 바닥처럼 느꺄졌다. 정말이지, 이 타석이 오늘 경기 최대의 하이라이트임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허무하게 아웃



양현, 김동준, 송성문 등 1.5군급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만약 직관을 가지만 않았더라면, 오늘 경기를 '희망이 보였던 경기'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경기 보느라 고생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