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야구

21.04.15 고척 LG - 키움전 직관 후기

  마지막으로 고척 스카이돔을 찾았던 것은 작년 1월이었다. 운 좋게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엿볼 기회를 얻었고, 2019시즌 중반 부상으로 아쉽게 이탈했지만 훈련 기간동안 여전히 회전수가 높게 나오는 안우진과 화면에서 느끼지 못했던 리더쉽의 이지영을 보며 다가오는 봄을 기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겨울이 지나가면 종식될 줄 알았던 코로나19는 상상 이상으로 질기게 우리의 일상을 물고 늘어졌다. KBO리그의 개막은 5월이나 되어서야 이루어졌고, 선수들뿐인 야구장에 관중들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 사이에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야구 관람은커녕 야구장에 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니 '야구를 보러' 야구장에 찾아가는 것은 사실상 1년 반만의 일이었다. 

 

 

 

그냥 해가 지는 시간대에 가서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전에는 자주 찾아갔기에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구일역을 찾아가지 못한 사이 많은 것이 변한 것일까. 442일만의 고척돔은 둔감한 사람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더러워 보였다. 지붕 위의 먼지와 녹 같은 것들이 엉켜 이뤄졌을 검정 때가 지위지지 않은, 5층짜리 주공 아파트의 어느 가정집 화장실 욕조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구일역 2번 출구로 나오고 나서 마주친 고척 스카이돔에 대한 인상은, 기쁨이나 설렘 같은 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당혹감, 의뭉스러움 같은 것들...

 

 

 

  주인 아주머니께서 TV조선 채널을 틀어놓고 계신 순대국밥집에 들어가 수육과 매콤순대국밥을 시켰다. 

  KBO에서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통합 매뉴얼에 따라 경기장 내 취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확히는 관중석에서만 취식이 불가능하고 복도에서는 내부 매장에서 판매하는 음식물을 먹을 수 있지만, 모두가 선수들의 플레이에 집중하며 열광하는 동안 어중간하게 서서 무언가를 먹는 것만큼 처량한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치킨 따위를 사들고 들어갔던 예전과는 달리, 고척돔 옆 동양미래대학 인근의 식당가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대단한 맛집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음에도, 고척돔 내부의 푸드코트의 음식들이나 구일역 앞에서 파는 치킨보다 더 맛있었다.

 

 

 

약 4년만에 새로 히어로즈 모자를 구매했다. 짭캐, 우타거포 정협신의 싸인을 받은 모자는 이제 그만 집에 모셔놓자...

 

 

커다란 키움 히어로즈 헬멧을 씌워놓은 쓰레기통이 참 귀여웠다! 이건 사진으로 간직해야겠다~ 하고 카메라를 꺼내던 이 순간이, 이날 고척돔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1루 3층지정석 자리를 예매했다. 뷰는 나쁘지 않았지만 묘하게 콘서트 맨뒷자리에 앉은 느낌이라 외야석보다 별로였다.

 

 

  초반까지만 해도 굉장히 순조롭게 경기가 풀려갔다. 선발투수 에릭 요키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에이스다운 피칭을 이어나갔다. 그라운드 위의 폭탄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김혜성과 서건창이 경쟁이라도 하듯 호수비를 선보였다. 경기 시작 전까지만 해도 5할대 OPS였던 프레이타스는 매 타석마다 2루타를 쳤다. 이용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며 '오늘은 고해성사의 날이구나~'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6회초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7회말 마운드에 올라와 키움의 상위타선을 삼자범퇴 처리하며 데뷔 11년만에 친정팀을 상대로 홀드를 챙긴 김대유의 활약은, 키움 팬이라면 가슴이 찢어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이 팀은 불펜투수 많다고 김상수 어거지로 팔았다가 이영준 팔꿈치 터지고 조상우 부상으로 이탈하고 오주원 에이징 커브 정통으로 맞아서 매 경기 김선기 올리는 중인데...

  김대유가 KBO리그에서의 생존을 위해 사이드암으로 투구폼을 수정했던 때부터, 나는 그가 한때 1차지명권을 홀라당 날려먹었던 선수였음은 생각하지 않고 모든 야구팬이 '김대유'라는 세 글자를 알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요즈음 같은 때에 김대유가 올라와 보란듯이 호투하는 모습은, 마냥 박수 갈채를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2010년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에서의 실책이야 김시진 감독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늘날 이 팀의 한결같이 답 없는 신인픽은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내일 문 닫는 회사' 바지사장의 전형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다 떠난 김치현? 눈 앞의 기량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선수를 뽑는 듯한 고형욱? 김치현을 단장의 자리에 앉혔을 것으로 보이는 허민 전 이사? 강정호와 박병호 판 돈을 자기 뒷주머니에 쑤셔넣다 감방에 들어간 이장석? 아니면 안정훈과 김선기를 1라운드에서 지명하는 모습을 보고 '이 팀은 미래도 현재도 생각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음에도 탈키움을 하지 못한 나 자신?

 

 

 

  8회초에 조상우가 마운드에 올라와서 놀랐고, 최고 147km/h밖에 나오지 않는 구속에 한 번 더 놀랐고,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구위로도 타자들을 요리하는 모습에 세 번 놀랐다. 그럼에도 조상우를 너무 일찍 올린 것일까 하는 생각은 도무지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부디 홍원기 감독 겸 제3대 바지사장이 차기 마무리 후보라던 김태훈, 김성민, 김재웅을 모두 아무 때나 올리다가 말아먹던 것처럼 조상우도 급하다고 아무 상황에서나 등판시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쨌든... 1년 반만의 직관이자 2021년의 마지막 직관이 될 수도 있었던 4월 15일 경기 관람은 내게 추례한 상처만을 남겼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