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

갑작스럽지만 여러분께서는 홍대에 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시간이 지나 저는 처참한 홍대 데뷔 실패의 악몽을 계기로

 

부끄러움도 친구도 없는 히키코모리가 됐으며

 

최근에는 오랜 오타쿠 생활을 청산하고 힙찔이가 되었습니다

 

공공구, 라드뮤지엄, 최엘비, 짱유, 으네...

 

어디 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뮤지션이라고 말했다간

 

해당 장소의 온도가 3도쯤 낮아질 수 있는 이름들을 플리에 넣고

 

히히덕대는 방구석 힙찔이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제가 좋아하는 인디 래퍼 그룹의 유튜브 채널에 

 

1년 n개월만에 EP 앨범을 출시할 예정이며 

 

홍대의 모 가게에서 음악감상회를 진행한다는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였습니다 

 

해당 그룹이 쇼미에 나가든 어쩌든 해서 뜨기만을 바라던 저로서는 

 

그야말로 열광할 만한 소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상에 따르면 좋은 유통사를 찾느라 발매가 늦었다 했습니다 

 

따로 안무가도 구해서 댄스를 연습하는 등 열심히 준비했답니다 

 

그야말로 제 원픽 그룹이 하꼬를 벗어날 것만 같은 달콤한 떡밥들! 

 

팬으로서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요?

 

 

 

구글에 음감회 후기를 검색해본 결과 

 

음감회는 음악감상회의 약자로서 

 

특정 아티스트의 팬이 한 데 모여 미발매 신곡을 함께 듣고 

 

새 앨범 관련 Q&A나 해설 등을 진행한 뒤 헤어지는 

 

매우 정적이고 얌전한 행사였습니다 

 

모든 취미를 방구석에서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무장한 히키코모리아싸도

 

견딜 수 있을 듯했습니다

 

 

 

그렇게 금단의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치 개구리가 펄펄 끓는 냄비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자살행위를 저질러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n년만에 다시 찾은 홍대는 여전히 양기가 넘쳤습니다 

 

아무 목적 없이 찾아왔다면 분명 처음 왔을 때처럼 비명을 지르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다시 탔을 것입니다 

 

 

그래도 애써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음감회는 'inssa', '양기'와는 상관 없는 행사니까 

 

가서 음악만 듣다가 뒷풀이 같은 거 참여 안 하고 나오면 되니까 

 

혹시 말이 통하는 팬이 있으면 스몰토킹 좀 하다 오면 되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갔던 건데...... 

 

미리 공부한 음감회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음감회가 예정된 지하 바에 들어서자 보였던 것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혼신의 디제잉으로 외힙을 믹싱하고 있는 래퍼 한 명

 

지인들과 즐거운 음주가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래퍼 한 명

 

그리고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래퍼 지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를 제외한 음감회 들으러 온 일반 팬(추정)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시작 시간이 넘었지만 신곡은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싶었지만

 

즐겁게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그들의 틈에 낄 넉살도 없으니

 

'사람이 적어서 아직 시작을 안 했나보다~'하고 음감회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며

 

칵테일 한 잔을 시켰습니다(양 적고 비쌌음)

 

 

 

 

 

 

10분이 지나도 음감회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20분이 지나도 음감회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30분이 지나도 음감회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40분이 지나도 음감회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인싸들의 유희를 지켜본지 어느덧 50분이 지났을까 

 

애꿎은 빈잔만 만지작거리고 있기도 지쳐서 

 

가게 주인에게 음감회는 몇 시 시작이냐고 물어봤습니다 

 

10시 30분에 시작이고 그 전까지는 릴리즈 파티(?)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인스타 공지에 올라왔던 음감회 시작 시간은 8시 30분이었습니다 

 

새벽 2시까지 한대서 '와ㅋㅋㅋㅋㅋ 한 2시간짜리 2디스크 앨범 준비했나봐!'하고 갔던 건데 

 

실은 '음감회 시작 전 2시간 파티 중간에 음감회 이후 새벽 2시까지 파티'였던 것입니다 

 

 

 

펄펄 끓는 양기 아래서 한 시간을 더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렇게 저의 생애 두 번째 홍대 나들이는 

 

어떤 점에서는 첫 번째 홍대 도전 때보다 처참하게 끝이 났습니다만 

 

여러분께서는 홍대에 들러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홍대에서의 시간은 즐거우셨나요? 

 

만일 친구들 혹은 처음 만난 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면 

 

당신은 이 블로그에서 당장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음감회라는 이름의 파티를 열어 아싸에게 상처를 줬던 가수들의 앨범은 오늘 나왔습니다만

 

1년 넘게 준비했다면서 16분짜리 분량의 앨범이었고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전혀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스포티파이 팔로우를 해제했습니다

 

 

 

그럼 즐거운 새학기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