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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2018.04.26 2연패 직관 후기

오후 여섯 시가 다 되어서야 조별과제가 끝이 났다.

곧바로 잠실 야구장까지 가도 최소 2~3회 즈음에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지난 일주일 간 시험으로 밤을 세웠던 것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인지 무척 피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운동장역으로 향했다. '설마~ 스윕패까지 당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서...




표를 끊고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난데없이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응원가로 보나 목소리의 크기로 보나 넥센이 뭔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크보어플을 켜보니, 양석환이 선제 솔로포를 날린 것이었다. 잠실구장에 올 때까지 아무런 실점 알림이 없었어서 '아! 오늘 신쟁은 안심하고 봐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마치 신쟁이 사이드스로우로 내 뺨따구를 때리며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고 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넥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경기를 지켜봤다. 소사는 고작 3회가 지나가는데 마흔 개가 넘는 공을 던지고 있었고, 해가 지고있는 잠실구장은 아름다웠고, 평소보다 고종욱선수의 등이 듬직해보였다. 뭔가 될 것 같은 날이었다.




우리의 일당백 넥센팬들은 오늘도 소수정예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매 이닝 공격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내가 돈만 많았다면 오늘도 저 사람들과 함께 했을텐데... 너무 아쉽다ㅠ




외야석에 앉으니, 어제 경기에서 공수 양면으로 슈퍼 플레이를 펼쳤던 고종욱선수가 정말 또렷하게 잘 보였다. 마침 이 사진을 찍기 직전에 초구를 건드려 아웃을 당했었기 때문에, '오늘은 얼마나 속을 뒤집어놓나 보자' 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지켜봤다. 근데 오늘은 수비에서는 생각보다 삽질을 안 했다 띠용




맨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오늘 굳이 야구장에 간 것은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팍! 왔기 때문이었다. 오늘 잠실에 가면 뭔가 확 하는 볼거리를 보고올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볼거리가 설마 연속 퀄리티스타트 기록이 깨지는 볼거리일줄은 몰랐다. 불안하게 자꾸 만루를 만들어대길래 각 잡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신나게 얻어맞았다. 

몸에맞는 공으로 4실점째를 내주는 장면은 신박했다. 아니, 그냥 오늘 신재영선수가 오늘 실점을 주는 방식이 새로웠다. 시도때도없이 시원한 장타를 펑펑 허용하다가 물집을 바라보며 내려가던 평소와는 달리, 한 이닝에 2번이씩이나 고의사구를 내주고 그 직후 보란듯이 실점하는 것은 처음 봤다. 실점 패턴에 매너리즘에 와서 변화를 준 것일까? 만약 신재영이 선발이 아닌 불펜투수로 뛰었다면 임경완, 정재훈에 이은 크보의 명작가로 이름을 날렸을 것 같다.




이렇게 경기 초반부터 점수차가 벌어지기 시작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당백 넥센팬들은 포기하지 않고 공격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목이 쉬어버려서 쇳소리가 나올 때까지 응원을 했다. 이에 우리 영웅군단은 단 한 순간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너희가 힘 내서 응원할수록 우리의 힘은 빠진다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투수들은 신바람이 나서 상대팀 타자들이 흥겹게 방망이를 돌릴 수 있도록 공을 던져줬다. 신재영이 털리면 김선기가, 김선기가 털리면 조덕길이 올라와서 얻어터졌다. 주변에 있던 엘지팬 아재들은 신이 나서 서로를 마주보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고, 넥센팬 아재들은 조용히 맥주만 들이켰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안타와 오늘따라 수비에서 실수를 하지 않던 고종욱의 모습에 간간히 박수만 칠 뿐이었다.




8회말. 늦게서야 찾아온 무사만루의 찬스마저도 미친 병살타로 날려버리자, 그재서야 넥센 팬들의 투지가 꺾여버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소수정예였던 관중 수는 이제는 소수정예라 부르기도 힘들 정도였다. 아니 애초에 그 점수차에 다들 안 가고 남아서 응원하셨던 게 대단하시다. 그리고 팬들의 간절한 염원을 발로 차버린 우리 영웅 군단도 정말 대단하다.




8회초가 끝난 뒤, 무사만루때 '혹시?' 하고 숨죽여 지켜보던 엘지팬들은 확실히 승리를 가져왔다고 확신해 민족의 아리아를 열창했다.

외~ 쳐라 무적 엘~~~~지! 자~ 승리하라 엘~~~ 지!
엘~ 지의 승리 위~~~~해! 다~ 함께 외쳐라~~~

지켜보고 있자니 괜히 서러워졌다. 내가 넥센팬들이랑 같이 승리를 위한 함성 부르면서 기분 좋게 승리의 순간을 지켜보려고, 아파트 부르면서 으쌰으쌰! 하려고 이틀 연속으로 온 건데. 천적 엔씨 상대로도 스윕은 안내줬는데 설마? 하고 왔는데 이 양반들은 기어이 해내고 말았구나. 3연전 모두 졸전은 기본에 시작과 끝을 대패로 장식하는구나...

이후 9회초 넥센 공격 때, 넥센도 승리를 위한 함성을 틀기는 했다. 하지만 그 때는 더 이상 승리를 위한 함성을 부를 넥센팬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왕 온 거, 마지막에 희망의 불씨라도 살리나 지켜보고 가자! 하며 9회초 공격까지 보는데 선두타자 대타로 김태완이 나왔다. 평소의 텔미와는 달리, 나름 수싸움도 하고 타구질 좋은 파울도 만드는 등 분전은 했다. 하지만 결과는 삼진아웃. 

거포타자에게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다려줘야한다는 의견은 나도 동의하지만, 그래도 내가 야구보러 왔을 때 홈런까지는 아니더라도 안타 하나 쳐 주는 게 그렇게 힘든걸까? 




경기가 끝나고 나서 집에 가려는데, 1루쪽 엘지팬들이 다함께 무적엘지를 외칠 때 내 주변에서 묵묵히 야구를 보시던 넥팬 아재가 구호에 맞춰 '무!!! 적!!! 꼴!!! 지!!!'를 외치셨다. 아재가 악을 질러가며 외쳤던 그 꼴지는 과연 꼴G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꼴지에 가까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항 기세인 개넥센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그래도 오늘 김동준이 2이닝 무실점도 했는데 주말 겆쇀전 직괔갔을 땐 이겼으면 좋겠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