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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2018.04.28 충격의 역전패 직관 후기

불펜투수들이 올라오는 족족 얻어터지며 대패. 답이 없는 수비와 방망이를 들고는 있는건지 궁금한 타격으로 패배. 한 이닝에 두 번이나 만루작전을 펼치며 장난질을 하다가 얻어맞고 대패. 그냥 얻어맞고 대패... 이런 식으로 이번주에 치른 4경기를 모두 패배했고, 그 중 두 경기를 직관했다. 하지만, 지난 밤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척 스카이돔 1루 블루석 두 장을 예매했다. 선발투수가 에이스 로저스이기도 했고, 설마 5연패를 하겠냐는 안일한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고 구일역까지 가는 길에 스포츠뉴스를 보는데, 마이클 초이스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한다는 기사가 떴다. '아무리 초이스가 못해도 고종욱을 빼는 게 먼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듦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 때 상상했던 것은 오늘 고척돔에서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그 정도는 아니었다...




경기장 안에 들어온 직후 찰칵.

마지막으로 고척 스카이돔에 직관을 하러 갔던 것은 작년 3월 31일, LG 트윈스와의 개막전이었다. 당시 히어로즈는 은퇴 후 10년 간 프런트로 일했던 장정석 팀장을 감독으로, 그리고 생활의 달인 펑고의 달인과 필리핀 가이드를 주루코치로 선임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고 고척돔 앞에도 'Burgundy Revolution'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어놓았었다. 결과는 2대1로 패배. 그 전에도 WBC 직관와서 패배를 보았으니, 오늘 경기에서 넥센이 패배하면 고척 직관 3연패를 하게 되는 셈이었다.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밖에 나가서 컵ㅡ스테이크를 샀다. 가격이 비싸지만 맛나고 배부른 컵ㅡ스테끼. 수요일에 잠실구장 안 BHC에서 사먹은 22000원짜리 순살 뿌링클팩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런데 순살 뿌링클을 사갖고 들어왔더니, 넥센 히어로즈는 벌써 SK에게 1점을 헌납한 뒤였다... 어리둥절해서 함께 직관온 아버지께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수비를 너무 못해서 점수를 준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말만 들었을 때에는 내가 컵 스테이크를 사러나간 동안에 얼마나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는지 감이 잡히지 않났는데, 이 대화를 나눈 직후에 김하성이 더그아웃을 향해 송구를 하며 1점을 더 헌납하는 것을 보면서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김하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장영석, 김태완을 대신해 1루수로 출장한 김규민은 견제구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넥센팬들의 속을 썩어들어가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오늘 김규민이 외야수 글러브를 끼고 출장했다고 하는데, 대체 왜 1루수로 뛸 준비 하나 되지않은 선수를 1루로 출장시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실구장 전광판으로는 어웨이팀 타자들의 출루율이나 장타율 같은 세세한 스탯을 알 수가 없고 또 굳이 사서 고통받고 싶지 않아 직접 세부스탯을 찾아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오늘 고척돔 전광판을 통해 고종욱의 OPS가 6할 극초반에 수렴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 세상에! 감독님께서는 대체 왜 수비도 못하고 타격도 못하는 선수를 고집스레 붙박이 선발로 출장시키고 계신 것일까? 제아무리 초이스와 임병욱이 부진하다 해도 초이스가 고종욱보다는 잘 칠 것이고 임병욱이 고종욱보다는 수비를 잘 할 것인데, 대체 왜?

물론 아무리 생강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이 세상 인간들이 모두 저마다의 생각을 갖고 살듯이, 감독님께서도 자기 나름대로 고종욱선수를 고집스레 기용하고 계신 이유가 있으실 것이다. 고종욱선수가 지금의 부진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타선에서 용암처럼 뜨겁게 선봉장으로 활약하리라는 기대라도 품고 있으시겠지.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이번 주에만 3번째 직접 보고있는 고종욱선수가 오늘도 여지없이 끔찍한 활약을 펼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도 속상했다.




다행히 경기는 서서히 넥센 쪽으로 기울어졌다. SK 와이번즈 야수들의 실책에 힘입어 야금야금 안타를 치고 나가다가 김규민선수의 벼락같은 3루타와 김혜성선수의 혜성같은 2루타로 단숨에 동점을 만들어버렸고, 이후 김하성선수의 실책을 만회하는 2루타로 역번에 성공했다!




그저께 잠실 LG전을 직관갔을 때 LG팬들이 민족의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목청껏 승리를 위한 함성, 아파트를 부르며 넥센의 승리를 두 눈으로 목격하러 온 건데 무엇을 하고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지난 후기에 적어놨는데, 오늘은 드디어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신나게 승리를 위한 함성을 부를 수가 있었다! 아파트도 불렀으면 정말 흥겨웠을텐데, 끝끝내 아파트를 틀어주지 않아서 아쉬웠다...



9회초. 마운드에는 조상우선수가 올라왔다. 1루 응원석의 모든 넥센팬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함께 직관온 아버지에게 쉴새없이 쫑알대던 꼬맹이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커플도, 묵묵히 팔짱을 끼고서 경기를 보던 아재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조상우의 묵직한 강속구에 환호하고 박수츨 쳤다. 150이 찍혔는데 심판이 볼 선언을 하면 모두 스트존을 보지도 못했지만 아무튼 '아 뭔데 150 찍혔는데 왜 볼인데'라며 투덜댔다.




조상우가 실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관중석은 조상우가 동점 적시타를 얻어맞는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다들 뒷모습만 봐도 얼마나 실망하고 있는지, 허탈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것만 같았다. 옆에서 응원하던 꼬맹이가 가까스로 블론의 충격에서 벗어나 '아~ 이거 연장 가겠네~'라고 이야기했다. 꼬맹이의 아버지가 그렇다고 동조해줬고, 나도 어렴풋이 연장승의 기쁨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런 기대마저도 최정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SK 와이번즈는 조상우의 150km/h강속구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끝끝내 역전에 성공하고 말았건만, 우리의 영웅들은 마치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울부짖으며 절망의 수렁에 빠진 조연A마냥 박정배의 144km/h 직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 그리고 넥센 히어로즈는 5연패째를 기록하였다. 9회초에 투아웃을 잡아낸 직후만 하더라도 '단상 인터뷰 때 로저스랑 누구누구가 올라올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넥센이 내일 6연패를 할까 연패에서 탈출할까, 내일 감독님이 경기 전에 뭐라고 인터뷰하실까 하는 상상따위나 하고 있다. 



(9회 전까지만) 잘 싸웠다 영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