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방영된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3'의 3차 예선에서 처음 전파를 탄 오왼은 아직 힙합 신에 이름조차 알리지 못해, 예명이 아닌 본명 '김오왼' 석 자가 적힌 이름표를 체크무늬 셔츠 위에 붙이고 있었다. 갓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어색한 가르마 머리의 모습이었던 청년은 음원 미션까지 단 한 걸음만 남은 상황에서 하필이면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슈퍼루키 둘과 맞붙었다. 한 명은 프리스타일 랩의 강자로 훗날 한국 힙합을 이끌어가리라 기대받았던 올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단 1년 만에 참가자가 아닌 심사위원으로 방송에 참가한 스윙스가 적극적으로 밀어주던 기리보이였다.
결과적으로 오왼은 그 둘에게 모두 패배하면서 이렇다 할 언더독의 반란 같은 그림을 만들어 보이지 못한 채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둘과 비교했을 때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그의 실력은 아티스트로서 흙 속에서 파헤쳐지기 전의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히 빛났다. 방송 출연 직후 약 1년의 짧은 시간 동안 무려 세 장의 믹스테잎(<Owen Ovadorz Part 1&2>, <ODB Part.1 : ODB>)과 한 장의 EP(<OP>)를 발매하며 본인이 '한 철 쇼미 래퍼'가 아님을 입증한 그는,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올라와 있던 데뷔 3년차의 1월에 정규 분량의 앨범을 정식 음원 발매하며 대중들에게 '예능 프로그램 참가자'가 아닌 '아티스트' 오왼 오바도즈의 모습을 선보였다.
더 콰이엇이 믹싱과 마스터링을 담당했고 그루비룸이 프로듀싱에 참가했으며 루피, 나플라, pH-1, 오케이션, DPR LIVE(現 활동명 홍다빈), 팔로알토, ELO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이 앨범의 이름은 <P.O.E.M>이었다. <P.O.E.M>은 오왼이 훗날 SNS를 통해 무수한 구설수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힙합 팬이 하염없이 격려하고 응원하며 그의 음악을 기다리게끔 만들었다. <P.O.E.M>은 그 어떤 오점으로도 오왼이라는 이름이 흐려지지 않게 해주는 그의 얼굴인 셈이다.
비가 내림에도 꿋꿋이 내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비가 내리게끔 만들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꿀꿀한 날씨 속에서도 당황하기는커녕 여유롭게 하늘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오왼과
나침판 위 더콰이엇의 얼굴이 인상적인 앨범 커버.
기존 <P.O.E.M>의 앨범 커버와 비교했을 때 색 반전이 됐다는 점,
그리고 원판의 유통을 맡았던 레이블 MKIT RAIN의 로고가 빠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차이가 없다
사실 앨범 자체도 믹싱이 더 깔끔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혀 다를 바 없다
'8주년 기념 리마스터'라고는 하는데 5주년도 10주년도 아닌 8주년인 점도 뭔가 애매하고...
오죽하면 팬들 사이에서도
'오왼이 MKIT RAIN에서 나온 뒤 <P.O.E.M>을 통해 음원 수익을 못 받으니 발매한 거 아니냐'
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도 <P.O.E.M>의 리마스터판 발매에 대해 불평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절판된 지 8년이 다 돼가는 <P.O.E.M>은... 지금 구하려면 중고나라에서 플미가 잔뜩 붙은 걸 사야 하니까.........
트랙 하나하나가 버릴 게 없지만
무엇보다 80~90년대의 포스트 얼터너티브 락밴드인 Quicksand(퀵 샌드)의 곡 STARCROST를 샘플링한
'작업'이라는 곡이 제일 끌렸다
소울 컴퍼니 시절의 올드스쿨 한국 힙합을 2016년 버전으로 재해석한 느낌?
굳이 굳이 이런 블로그에 와서 이런 글까지 찾아볼 정도면 이미 <P.O.E.M> 전곡을 들어봤겠지만
그래도 혹시 아직이라면 지금 감상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 같은 레이블 소속이었던 나플라와 합을 맞춘 'mmm'도 참 산뜻하고 서정적이고 좋다
하지만 나플라는... '그래도 실력은 좋잖아~', '그래도 작업물은 죽여주잖아~'라는 말로 외면하기에는 너무 많이 추해졌다
작업물이 아티스트의 얼굴이라면 아티스트는 작업물의 몸뚱이이기도 하다
어느 예술가가 구질구질한 구설수에 빠져버리면 그의 작품에 대한 몰입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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