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경계의 무너짐이 힙합을 망쳤어" 2021년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 10'에 참가하며 플레이어로서 한국 힙합신에 다시 뛰어들었던 래퍼 Basick이 세미 파이널 경연곡 "08베이식"을 통해 외쳤던 말이다. "08베이식"은 2008년 당시 사이먼 도미닉·이센스·스윙스 등과 함께 가장 주목 받는 신인 래퍼 중 하나였던 베이식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포부를 담은 곡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멜로디컬한 가사를 단 한 소절도 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강점인 타이트한 랩으로만 4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을 꽉 채움으로써 당시 힙합 신의 주류 트랜드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당시 Mnet의 흥행 보중 수표였던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아홉 번째 후속작인 'SHOW ME THE MONEY 10'은 무려 10년째 진행 중인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음원 미션("TROUBLE", "Wake Up", "쉬어")부터 시작해서 본선("회전목마",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리무진"), 세미 파이널("호우주의", "MBTI")까지 무수한 곡들이 음원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리며 역대급 흥행몰이를 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힙합 팬들의 해당 방송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연곡이 힙합 팬들이 기대하던 장르의 색채가 약한,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한 대중석의 모색 의도가 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SHOW ME THE MONEY 3'(2014)에 참가했던 바스코(現 BILL STAX)는 락 사운드의 색채가 강한 음악을 경연에서 선보였다는 이유로 힙합이 아니라며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B.I, BOBBY, 송민호 등 초창기 방송에 참가했던 무수한 래퍼들이 그 뿌리가 언더그라운드가 아닌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적대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프로듀서들이 본토 힙합 신에서 유행하던 트랩 음악과 싱잉, 오토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SHOW ME THE MONEY 8'(2019)은 팬들에게 최악의 식으로 기억되었고, 가사의 퀄리티보다는 청각적 쾌감에 집중한 랩을 시도했던 타쿠와는 펀치넬로, 양홍원, BIG Naughty와 함께 TOP 4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음에도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렇듯 'SHOW ME THE MONEY' 시리즈는 애청자 힙합 팬들이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는 상황 속에서 대중성과 장르적 특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매 순간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SHOW ME THE MONEY 10'에 와서는 2차 경연에서 싱잉 랩 "Counting Stars"을 열창했던 BE'O, 얼터네이티브 케이팝을 표방하는 크루 Balming Tiger 소속으로서 방송 참가 직전 락 사운드가 중심을 잡고 있는 EP [Field Trip]을 발표했던 Mudd the student, 레게 가수 쿤타, 그리고 노스페이스갓·황지상·송민영·365LIT 등 대중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트래퍼가 대거 음원 미션에 진출하면서 장르적 특성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리고 음원에서는 이를 만회하려는 듯 대중성에 치중한 곡들을 발표했다).
'SHOW ME THE MONEY10'은 파이널 무대에 가까워질수록 랩 스타보다는 팝 스타의 색채가 진한 BE'O와 무대 위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선보이는 속사포 래퍼 조광일의 이파전으로 구도가 형성되었다. '합합스러운 노래'가 좀처럼 경연에서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던 힙합 리스너 중 일부는 BE'O에 대해 '힙합이 아니라 아이돌 음악을 하고파 하는 것 같다'라는 날 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본선 경연 때까지만 해도 BE'O 이상의 충격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던 참가자가 있었다. 커리어 전체를 알앤비 가수로서 보내왔지만 소울풀한 음색을 앞세운 싱잉'만'으로 프로듀서들을 사로잡음으로써 모든 예선 무대를 통과한 Tabber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DEAN의 제안으로 you.will.knovv와 계약하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Tabber는 펀치넬로, ROMderful, APRO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눈도장을 찍고 같은 회사 소속 프로듀서인 2xxx가 전곡 프로듀싱하고 김심야, 황소윤, DEAN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오피셜 믹스테잎 [Deep End Mix Tape]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믹스테잎 발매 후에는 칸예 웨스트와 작업했던 Keyon Christ가 피처링한 싱글 "Electric Animal"을 발매하고 THE:RISE 프로젝트에 참가해 미공개 곡 Adrenine을 발매하여 2개월 후 참가하는 'SHOW ME THE MONEY 10'에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SHOW ME THE MONEY 10'에서는 팬데믹 시기에 데뷔했다는 한계로 인해 라이브 면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동굴처럼 깊은 저음과 높은 고음을 동시에 소화하는 특색 있는 보컬로써 음원 미션과 본선 경연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데 성공했다. 방송 출연으로부터 약 2년간 피처링까지 모두 합쳐도 7곡을 내는 데 그쳤던 지난 2년간의 행보는 좋게 이야기해도 활발하다고 말하기 어려웠으나, 작년 말 EP [Madness Always Turns to Sadness]로써 복귀를 신고하며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선사했다.
음원 사이트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화날 때의 모습과 허무함을 느낄 때의 모습이 다르듯이, 당시 내 감정의 흐름을 순차적으로 정리해서 표현한 앨범이다. 점차 변하는 감정의 모습들은 각각 다르지만, 그 감정을 느끼는 주체인 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변함이 없다."라고 스스로 소개한 [Madness Always Turns to Sadness]는 총 일곱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백예린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타이틀 곡 "Being"과 실리카겔의 김한주가 참여한 7번 트랙 "Invisible Man"을 제외한 모든 곡을 2xxx가 프로듀싱했다.
앨범 제목에 걸맞게 1번 트랙 "Healing Killing"에서부터 가사에 강렬한 분노를 담아냈는데, 이전 2xxx와의 작업물에서 보여줬던 모습의 연장선과 같은 곡으로써 Tabber가 무대 뒤로 모습을 감춘 오랜 기간 동안 그를 기다렸을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1번 트랙이 끝난 뒤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시작되는 2번 트랙 "Baby Doll"은 앞선 곡보다 조금 더 격정적으로 변한 멜로디와 더욱 강렬한 가사로써 앨범이 '기'를 빠르게 넘어 '승'의 단계에 진입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2022년 발표한 소울, 얼터너티브 R&B, 일렉트로니카 전문 프로듀서 SYD와의 협업 싱글 "007"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곡이다.
3번 트랙 "shut the f**k up, that's mine"에 이르러서는 앨범의 무드가 다소 변화하는데, 청자에게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라고 이야기하는 가사에서는 여전히 분노가 느껴지나 기쁨이 느껴지는 무드의 보컬과 벅차오르는 분위기의 멜로디에서 가수의 감정이 서서히 광기에서 슬픔으로 넘어가는 단계임을 보여준다. Paul Balnco, Miso와 함께한 4번 트랙 "Creepin"에서부터는 태버의 섹시한 보컬에 내재된 그만의 특유의 울적하고 음울한 무드가 본격적으로 드러남으로써 앨범 후반부의 주제인 슬픔의 색채가 강렬해진다. 이는 타이틀 곡 "Being"에서 절정에 이른다.
가사의 세세한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DEAN이 그의 작업물을 듣고 곧바로 회사에 영입하려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Tabber 특유의 보컬이 얼터네이티브하면서도 복고풍의 비트 위에 얹혀짐으로써 선사하는 사운드 만으로도 들을 가치가 충분한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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