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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단막극

이하륜, 의복(1974)

  작가 이하륜 씨는 많은 활동을 하지 않으신 것인지, 검색을 해봐도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또한 본 작품이 발표된 1974년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 진행중인 때였는데, 이것이 본 작품과 큰 연관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의 세계관이나 발표 연도 따위는 본 작품의 특징으로 들기 어려워 보이므로, 작품의 내적 요소에 대해 주목하자. 우선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무대 장치와 소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 작품을연극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원형 회전 의자와 회전하는 원형 무대, 그리고 별빛이나 해빛을 연상시킬 조명 장치와 안개를 만들 장치, 마지막으로 수많은 특수 의상들이 필요하다. 의상은 둘째 치더라도, 회전 가능한 원형 무대와 조명 장치 등은 단막극 같은 조촐한 연극에서 재현하기란 은근히 까다로운 것이다. 이러한 점이 본 작품이 연극으로 많이 재현되지 못하게끔 방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디메리트를 덮어버릴 정도로 희곡의 문학적 매력이 상당하다. 인생의 종장에 이르러 '별을 갖고 싶다'는 물욕과 관련된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옷을 껴입으며 마치 주마등을 보듯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생을 재현하다가 고독한 죽음에 직명하여 고독에 발버둥치며 최후를 맞이하는 할멈, 그런 그녀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인생의 동반자로서 자신을 해쳐가며 할멈의 꿈을 충족시켜 주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더는 가까워지지 못하며 할멈의 영역으로 쫓겨나듯 퇴장하는 영감. 이러한 일련의 장면들은 우리네의 인생사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대입이 되어 상상이 되기 때문에, 가슴 한 켠이 저림을 느끼게 된다.


  김동인 작가의 소설 '무지개'를 연상케 하는 희곡이다. 잡힐 듯 말 듯 아름다운 무지개를 향해 달려가다가 꿈을 접었을 때 폭삭 늙어버린 소년과, 대기권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두꺼운 옷을 입고 영감과 함께 날아가면 딸 수만 있을 것 같은 별들만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평생을 함께해온 동반자와 이별한 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두통, 가슴, 고혈과 처절한 고독에 몸부림치다 죽음을 맞이했을 할멈. 개인적으로 김동인 작가의 무지개는 어째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교훈도 무엇도 없는 소설이기 때문에 매우 싫어하는데, 이하륜 씨의 희곡인 의복이 이와 조금 닮아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대표 단막극선에서는 할멈을 보고 부질 없는 욕망이니 허식이니 하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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