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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승리, 그 이상의 가치를 얻다. 한려대학교 야구부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이든지 단번에 만족할 수는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올해 한려대학교 야구부가 그랬다. 창단 첫 승을 목표 삼아 당차게 출범한 한려대 야구부는, 올해 총 14번의 공식 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14번의 패배 중 아홉 경기는 콜드게임 패였다.

  하지만 올해 한려대 야구부원들이 얻은 수확은 단순히 경기의 승패만으로 가늠할 수 없다. 한때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이들에게는 마음을 다잡고 재기하는 계기가 되었고, 야구가 간절해 한려대를 찾아온 이들에게는 야구에 대한 한층 깊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줬다. 이제 겨우 첫 시즌을 보냈을 뿐이다. 숨 고르기를 끝낸 한려대 야구부원들이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2020년을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반전의 기회가 되다

고교시절 갑작스레 찾아온 슬럼프. 한 때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김남구에게 한려대학교 야구부는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사진 출처 : 한국대학야구연맹)

  수창초등학교와 충장중학교를 나온 김남구는 진흥고등학교로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나름 탄탄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러나 진흥고 시절부터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며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전학이라는 초강수까지 뒀지만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3학년이라는 심리적인 부담까지 겹쳐 6점대 후반의 방어율로 부진했다. 프로 진출은커녕 대학 진학도 잘 풀리지 않아,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그때 아버지가 자신을 차에 태우고 데려갔던 곳이 한려대 야구부였다. 이는 김남구의 야구 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투수로 활약했던 김남구이지만, 올시즌에는 선수가 부족한 팀 사정상 외야수로 활약했다. 그리고 3할 9푼 4리의 고타율과 1을 훌쩍 넘기는 OPS(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야구계에 알렸다.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성적이었다. 시즌 종료 후 김남구는 이번시즌의 활약에 대해 "타자, 그리고 외야수 김남구로서 야구를 즐길 수 있었던 휴식 같은 해였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할 틈도 없이 치고 달리며 재미있게 지냈고, 그 덕분인지 성적이 잘 나와서 스스로 많이 놀랐다"라고 회상했다. 비록 후반기 들어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차고 즐거운 마음이 컸다. 김남구에게 있어 올시즌은 "오늘의 일에 대한 걱정보다 내일의 기대에 대해 꿈을 꾸는, 희망으로 가득 찬 1년"이었다.

 

  박상혁은 실제로 야구를 그만둔 전력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뒤, 그 길로 야구를 그만뒀다.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만큼 힘든 점도 많았다. "그만뒀던 야구를 다시 시작하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선수가 부족해 다들 포지션 상관없이 출전함에도 저는 징계로 인해 감독님 옆에만 있어야 하는 게 답답하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벤치에서 친구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느꼈던 마음을 되새기며, 함께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야구에 임했다. 박상혁은 한려대 야구부에서의 첫 시즌을 "초석을 다진 한 해"라고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는 전패를 한 약팀이라고 얕잡아 보겠지만, 우리에게는 좋은 팀원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1년이었다. 우정을 쌓으며 뭉치고 단단해져, 강팀이 되어가는 준비를 했다고 생각한다." 약팀이라고 주눅 드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대답이었다. 그렇기에 박상혁에게 있어 올 한 해가 반전의 초석을 마련한 해임을 알 수 있었다.

 

 

● 야구를 알다

야구를 특기라고 생각했을 뿐, 단 한 번도 취미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한려대학교 야구부에서의 1년 동안 손정빈의 야구관은 180도 달라졌다. (사진 출처 : 한국대학야구연맹)

  분명 순탄한 한 해는 아니었다. 경기에 나설 사람이 없다 보니 가장 공을 잘 던지는 선수가 아니라 가장 타자를 못 하는 선수가 마운드를 맡는 아이러니한 경기 운용을 하기도 했다. 시즌 막판에는 선수가 부족해 몰수패를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렇듯 고난스러운 시즌 운용과는 정반대로, 선수들의 야구에 대한 사랑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올시즌 팀의 톱타자로 활동했던 손정빈이 그랬다. 손정빈은 올 한 해를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게 해준 시즌"이었다며 돌아봤다. "그동안 특기가 야구일지언정 취미가 야구였던 적은 없었는데, 올해는 야구가 단순히 내 목표가 꿈을 위해서만이 아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활의 일부분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덕분일까? 고등학교 3학년 시절 2할 2푼 8리의 타율에 그쳤던 손정빈은, 올해 3할 3푼 3리의 고타율과 4할 6푼 8리의 높은 출루율, 그리고 9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훨훨 날았다. 시즌 중 부상으로 수술을 받는 일만 없었더라면, 김남구와 함께 공포의 상위타선을 구축했을 터였다.

  실력 면에서도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지만, 멘탈적인 면에서도 한층 더 단단해진 한 해였다. 손정빈은 "넉넉하지 않은 팀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을 찾아 움직이며 나만의 자기관리 방식을 터득했다"며, "야구선수 손정빈만이 아닌 인간 손정빈으로서 성장하는 계기를 갖게 된 한 해였다. 지금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 쭉 달려 나가는 원동력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 내년을 바라보다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는, 경기를 뛸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 더 컸다. (사진 출처 : 한국대학야구연맹)

  선수단이 너무 적었기에 시즌을 치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 모두 이러한 점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보다는, 내년에 대한 희망의 목소리가 더욱 컸다. 그만큼 한려대에서의 1년 동안 잃은 것보다 얻은 게 컸다는 이야기다.

 

  팀 내 유이한 18학번으로서 주장을 맡고 있는 신준식은 시즌을 온전히 치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작년에는 야구부에 부원이 단 두 명밖에 없어, 시합을 하기는커녕 정식 야구부로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장 준 감독에게 1대1 코칭을 받으며 1년을 담금질해왔고, 올해 열 명 남짓한 인원이 모임으로써 비로소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물론 올해 역시 다른 팀에 비하면 여전히 선수단이 적었기에 걱정은 많았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전업 외야수로서 경기에 나섰지만, 올해는 팀 사정상 내야수로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준식에게 있어 올 한 해는 "무탈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안녕했던 시즌"이었다. "정상적으로 한 시즌을 치르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느꼈다"는 그는, "우리 나름대로 한 시즌의 결말까지 볼 수 있었기에 다시 한번 같이 있어 줬던 팀메이트들에게 감가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지금까지 야구를 하며 치른 시즌 중 가장 힘든 시즌"이었다고 올 한 해를 회상한 임태우는, 한편으로는 가장 재미있는 시즌이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팀 뎁스 탓에 누구 하나 아프거나 다치면 경기를 뛸 선수가 모자랐다. 이 때문에 자기 포지션 외의 다른 포지션도 소화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실수에 대한 부담감은 적어 즐기면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쉽게 패배할 때마다 '아, 선수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딱 아쉬움의 선에서 털어내기로 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기 때문이다. "저는 아직 1학년이고, 팀도 제대로 참가한 첫해이기에 올해가 시작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00년생 새내기라고 믿을 수 없는 대답이다. 지난 1년간 임태우가 한려대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라인업을 채우기도 빠듯한 인원이라 대부분은 본인의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경기를 치러 전 경기 콜드패를 당할 줄 알았다"던 남재욱은, "예상보다 팀원들 간의 단결이 잘 되었던 덕분에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올시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마지막 경기까지 포기 없이 완주한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또 내년을 위한 큰 경험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고교 시절 입스 증상으로 인해 공을 던지는 데 불편함을 겪었으며 올시즌에도 주로 야수로 출장한 남재욱이지만, 소속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처럼 투수의 꿈 또한 접지 않았다. 그의 개인적인 목표는 겨우내 투구폼을 교정해, 내년에는 풀타임 투수로 활약하는 것이다.

 

  다른 선수들도 내년시즌에 대해 희망을 걸고 있다는 점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준식의 내년 목표는 "더 두터워진 선수층으로 팀원 모두가 부상 없이, 아프지 않고 시즌을 보내며 승수를 쌓아가는 것"이다. 남재욱의 목표는 "세한대 야구부를 이겨서 전남 대표로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것이며, 박상혁의 목표는 "개인 기록으로 3승"을 쌓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팀 사정을 생각했을 때는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새우잠을 자는 처지라고 해서 고래 꿈을 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과거 김시진 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시즌 전 미디어데이 때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확인하러 가겠다"고 이야기한 뒤 실제로 시즌 중 리그 1위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처럼, 내일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더군다나 올시즌 한려대학교 선수들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으며 최소 몇 뼘씩은 성장한 만큼, 내년에는 대학야구계를 깜짝 놀래킬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한려대학교 야구부원들의 활약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한 팬은 "선수들끼리 사이가 좋고 우애가 깊어서 정말 보기 좋다"며 수비 이닝이 길어져서 3~40분씩 수비를 해도, 더그아웃에 돌아올 때 짜증을 내거나 욕하는 선수가 아무도 없더라. 다들 웃으면서 서로 고생했다고 격려해준다"라고 이야기했다.

  비록 당장의 실력은 조금 떨어질지라도 인간으로서 응원하고 싶게 되는 야구부. 그리고 이제는 실력이라는 토끼까지 잡음으로써 대학 무대를 반전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야구부. 과연 신입 부원들까지 가세한 2020년의 한려대 야구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것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