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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아마추어 칼럼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 : 27년의 추억을 박살내다

스포 有

파이널 판타지 14의 나이츠 오브 라운드.

RPG.

 

롤 플레잉 게임(Role-Playing Game)의 약자이다.

 

구글에 검색해보면 RPG 게임에 대한 이런저런 정의가 나오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RPG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그 게임에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게임 속 캐릭터로서 매력적인 세상을 모험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어렸을 적에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쿨타임만 돌면 온갖 게임 커뮤니티에서 언급이 되곤 하는 옛날 메이플스토리만 봐도

 

'메이플 월드를 정말 모험하는 느낌이 들었다'라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지 않는가.

 

 

 

(이미지 출처 : 리니지 광고에서 발췌)

과거의 리니지는 어떤 의미에서 메이플스토리보다 더욱 'RPG'라는 장르에 어울리는 게임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흔히 린저씨라고 불리는 중년 남성 게이머들이, 리니지의 스토리와 세계관 등에 몰입하는 모습은,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혈맹'이라는 게임 속 커뮤니티에 속해있는 자신의 캐릭터에 이입해

 

마치 자신이 정말 그 세계의 혈맹원 모험가인 양 단체로 사냥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유저와 PVP를 벌이거나 혈맹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오히려 메이플에서 모험을 하던 어린 게이머들보다 더욱 훌룡한 롤 플레잉을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박동숙, 최정윤, 다 사용자 온라인 게임(MPOG)의 가상현실 경험에 관한 연구 : 리니지를 중심으로, 한국방송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2000, p.10.

한국의 경우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때문에 가정용 컴퓨터가 대중화 됨으로써 RPG 게임 등을 접하게 된 사람들이 '게임 속 세계에 몰입'하는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제3자에게 있어 "오~ 이 게임 정말 재밌나봐!"라는 생각보다는 "머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라는 공포스러운 생각이 들게끔 했을 것이다.

 

이로써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게임중독은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있어 무시무시한 질병으로 인식되었고,

 

덕분에 수많은 20대 게이머들이 어린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만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거나 하는 등의 규제를 받았다.

 

 

 

드래곤 퀘스트 11.

한국의 성인층 게이머들에게 있어 메이플스토리와 리니지가 대표적인 추억의 RPG 게임이라면,

 

이웃나라 일본을 대표하는 추억의 RPG게임은 단언컨대 드래곤 퀘스트일 것이다.

 

물론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신작이 출시되고 있는 현역 게임 시리즈이기는 하지만,

 

1980년대, 90년대에 드래곤 퀘스트를 즐겁게 플레이했던 중년 게이머들 또한 압도적으로 많지 않겠는가.

 

지난 몇 년간 리니지 2 레볼루션, 리니지M, 리니지2M이 나온다는 소식이 뜰 때마다 전국의 린저씨들이 들썩였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드래곤 퀘스트의 신작이 나오면 유년기 혹은 20대의 추억을 가진 아재들이 게임샵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 같다.

 

 

 

글쓴이는 20세기 후반에 드래곤 퀘스트를 플레이한 추억을 간직중인 아재는 아니다.

 

하지만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퀘 시리즈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얼마전 드래곤 퀘스트 5의 애니메이션 영화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가 넷플릭스로 풀렸다는 소식에 뛸뜻이 날뛰었고

 

오늘 낮에 일어나자마자 드퀘풍으로 방을 장식한 뒤 영화를 감상했다.

 

 

#팬보이를 위한 영화, 그렇기에 더욱 즐겁다

영화의 주인공 류카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마사가 납치되고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다니던 과정

 

그리고 그동안 드퀘5의 히로인 플로라와 비앙카를 만나고, 유령을 퇴치해 몬스터 게레게레를 길들이는 장면까지

 

모두 슈퍼 패미콤 시절의 16비트 그래픽으로 대체하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1~2분 정도밖에 안 되지만 드래곤 퀘스트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순간이며

 

어렸을 때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드래곤 퀘스트 5를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함박웃음이 지어질 정도로 기쁜 오프닝 씬일 것이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드래곤 퀘스트 5 원작과 큰 차이가 없다.

 

영화에서는 세세한 부분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굵직한 사건들만 언급함으로써

 

1시간 4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원작 게임의 최후반부 내용까지 스토리를 전개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영화의 전개와 편집이 너무 난잡하다는 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해본 유저들, 그리고 드래곤 퀘스트의 팬이라면 그런 자잘한 점에 대한 불만 없이 즐겁게 영화를 감상할 것 같다.

 

어차피 영화의 대부분의 스토리는 다 머리에 들어 있으니까!

 

 

 

오히려 중간 중간 깨알같은 장면에 그리움이 서린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까 싶었다.

 

주인공이 메탈 슬라임 노가다를 하는 장면, 인생의 반려자로 플로라와 비앙카를 놓고 갈등하는 장면은

 

그 때 그 시절, 조금이라도 더 강한 용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매력적인 두 히로인 중 누구를 골라야 할지 고민했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 명장면을, 최고의 그래픽으로 다시 한 번

2015년 제38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던 '도라에몽 : 스탠바이미'.

 

그 도라에몽 스탠바이미의 제작진이 3D 그래픽을 담당했고, 당시 공동연출을 맡았던 야마자키 타카시가 감독을 맡았다.

 

그 덕분인지 웬만한 디즈니 영화에 뒤지지 않는 미려한 그래픽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래픽으로 눈가가 절로 촉촉해졌던 명장면들을 다시 한 번 만나볼 수 있다.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가 너무나도 길었던 개발기간과 분할판매 이슈로 욕을 먹음에도 예약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모든 물량이 소진되고,

 

블러드 스테인드가 거듭된 발매 연기와 부족한 최적화, 자잘한 버그로 비판을 받았음에도 높은 판매량과 함께 호평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올드 게이머들의 다시 한 번 파이널 판타지 7을 즐기고 악마성 시리즈를 플레이하고 싶다는 욕구 덕분이 아니었을까?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는 그 때 그 시절 드퀘 플레이어들을 철저히 겨낭함으로써

 

일반 영화 관람객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년 아재들의 욕구만큼은 철저히 채워주는 영화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그 중년 아재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조금도 호평받을 부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사회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다

(이미지 출처 : MBC 뉴스 플러스)

한창 게임에 몰입해 즐겁게 키보드나 패드를 두드리는 친구를 가장 짜증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그 친구의 컴퓨터나 게임기를 말 없이 꺼버리는 것일 테다.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일본의 드래곤 퀘스트 팬들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영화는 최후반부에 와서 행복사하기 직전이었던 드퀘저씨들의 뒷통수를 케틀벨로 후려버린다.

 

드퀘5의 최종 보스인 밀드라스가 나와야 할 순간에 웬 알파고 낚시짤 닮은 로봇이 나와서는,

 

이 세상은 사실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VR 드퀘5의 데이터 내부이며 당신은 그 게임을 플레이중인 중붕이였고

 

자기는 VR 세계를 지루해하던 어떤 해커에 의해 만들어진 바이러스이니 이제 이 세계를 파괴할 것인데

 

자기 주인님이 당신한테 "어른이 되어라", "현실로 돌아가라"라는 메세지를 남겼다고 말하는 것이다.

 

 

 

드퀘저씨들을 정말로 화나게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로써 1시간 30분 내내 드래곤 퀘스트 5의 용사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시청하던 드퀘저씨들은

 

한 순간에 "드래곤 퀘스트 5의 용사에게 감정이입 중인 중붕이에게 감정이입 중이었던 중붕이"가 되어버린다.

 

 

 

가상현실에 현실이 개입되면 그 순간부터 가상현실의 공간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RPG게임에 이입해 한창 롤 플레잉에 이입하던 도중 강제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만큼

 

기분나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 묵은 추억을 조심스레 품에 안고 영화관을 찾아간 일본의 드퀘저씨들은

 

가장 참혹하고 기분 나쁜 방식으로 자신의 추억을 부정당해 버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걱정스러워졌다.

 

과연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은 사지가 멀쩡하게 살아있을까?

 

구글에 검색해보면 행방불명 된지 6개월이 되어가고 있다거나 고기완자로 발견됐다는 뉴스가 뜨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검색해봤는데 어디에서도 죽었다든가 팔 한 쪽이 잘렸다는 뉴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가 그리고 우리 지구촌이 아직은 따뜻하고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지구촌의 따스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오늘 밤에는 게임을 하는 대신

 

개봉 후 반년만에 넷플릭스따리가 되었으며 11일 뒤 13500엔에 블루레이로 출시 예정인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를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