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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아마추어 칼럼

우리는 어째서 패키지 게임을 구입하는가?

이제는 새 제품 상태의 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네온 오렌지 컬러의 PS 비타와 몬스터볼 에디션 2DS XL. 우리가 정펌으로 만났다면 더 행복했을텐데...

사례 1. 몇 년 전 플레이스테이션 비타와 닌텐도 3ds에 입문할 때 커스텀 펌웨어 작업이 되어있는 기기(이하 커펌 기기)를 구입했다. 2~30만 원 대의 커펌 기기를 구매하면 수십 가지 게임을 즐길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그 많은 게임을 즐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커펌 기기는 가격만큼의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전원을 켜면 메인화면에 수두룩하게 올라오는 게임 목록을 보고 있어도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재미있는 게임을 플레이해도 '이런 게임을 과연 공짜로 플레이해도 되는 것일까' 같은 생각에 도무지 엔딩을 볼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중고 장터에서 구매했던 닌텐도 3DS 슈퍼 마리오 2 동봉판과 게임 소프트 15장.

결국 얼마 안 가 커펌 기기를 모두 처분하고 당시에 다운로드 받았거나 플레이한 게임을 전부 발품을 팔아 구입했다. 커펌 기기를 구입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되는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정품 게임팩을 구매하고 나서야 비로소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없어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할 때에도 서랍을 열어 게임팩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심신의 피로가 절로 풀렸다.

 

 

위의 경우 콜렉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임기가 아직 현세대에 해당하는 기기였기 때문에 커펌시 비용의 2~3배 정도에서 그쳤지만, 80~90년대에 나온 게임을 콜렉팅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소모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당시 출시됐던 게임들은 대부분 한글화가 안 되었다는 문제점까지 있어, 그 게임을 하고자 한다면 온라인에서 4~5만 원에 판매 중인 에버드라이브를 구입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실기 게임을 구매해서 그걸로 플레이해야만 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지금도 침대 밑 서랍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과 슈퍼 패미콤 미니, 현재까지 휴대용 에뮬레이터 끝판왕으로 불리우는 rg350.

사례 2. 2016년 닌텐도에서 내놓았던 패미콤 미니와 이듬해 출시한 슈퍼 패미콤 미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레트로 게임계에 비로소 '복각 게임기' 열풍이 도래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기자기한 사이즈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디자인, 그리고 8~90년대의 닌텐도를 대표했던 인기 게임들까지. 성공의 이유는 충분했다. 이후 SNK에서 네오지오 미니, 소니에서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을 출시했으며, 작년에는 재믹스 미니와 메가 드라이브 미니가 출시되었다. 올해에는 PC 엔진 미니가 출시될 전망이다.

 

복각 게임기뿐만이 아니라 에뮬레이터 게임기 시장 또한 뜨겁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이제는 10만 원 남짓한 가격대에 플레이스테이션 1 게임을 원활히 플레이할 수 있는 에뮬레이터까지 존재하는 상황이다. 몇 달 전 토이저러스에서 수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rg-350의 경우 AAA급 게임기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날로그 스틱과 진동 기능을 탑재한 것으로도 모자라 PS1 게임을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무시무시한 성능으로 현재까지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자신이 리뷰하는 모든 레트로 게임을 실기로 플레이하기로 유명한 제임스 랄프. (사진 출처 : Cinemassacre 유튜브 채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 휴대성 등 여러 면에서 원작 이상인 듯한 복각&에뮬레이터 게임기를 외면하고 수십 년 전 출시된 실기 게임기로 레트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날이 어둡거나 실내조명을 끄고 있으면 플레이가 불가능한 게임기에 백라이트를 부착하거나 황변한 게임기를 정성껏 청소해 처음 샀을 때 그 모습으로 되돌리는 등, 실기 제품에 무시 못 할 금액과 노력을 쏟아붓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동물의 숲 시리즈는 DS 시절에만 해도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종이 설명서가 게임팩에 들어 있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더 이상 메뉴얼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례 3. 콘솔 게임 시장도 점차 디지털화됨에 따라 패키지 게임의 파이가 줄어드는 대신 인터넷으로 '마리오', 'GTA' 등의 게임을 다운로드받아 플레이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패키지의 구성 정도이다. 아직 플레이 스테이션 2와 XBOX가 현역이었던 시기에 출시된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은, 패키지 안에 DS 기기 사용 설명서부터 와이파이 메뉴얼, Wii 홍보 팜플렛에 수십 페이지짜리 게임 플레이 메뉴얼까지 만만치 않은 양의 종이 소책자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플레이스테이션 3에서 플레이스테이션 4로의 세대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던 시기(2012년)에 출시된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은, 패키지 안에 조작법 설명서 종이 한 장이 들어 있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에 출시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패키지에는 게임 칩만 들어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게임들이 패키지 안에 별다른 종이 설명서를 첨부하지 않고 있는 오늘날이다. 그리고 수많은 콘솔 게임 유저들 또한 '패키지 게임의 구성 간소화' 문제를 딱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게임 설명서?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오늘날에는 오히려 게임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 인터넷 매뉴얼을 보는 게 더 편할 것이다. 굳이 공식 설명집을 뒤지지 않아도 인터넷에 게임명을 검색하면 그 게임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종이 매뉴얼을 별도로 제작하지 않는 게 개발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얻기'에 익숙해진 게이머들 또한 큰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맞으니 패키지 게임 시장이 변화한 것일 테다.

 

 

2022년까지 콘솔 게임 시장에서 DL 게임이 전체 파이의 100%를 차지할 거라는 칼럼까지 나오고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2022년까지 겨우 2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아직까지 오프라인 게임 스토어에 가면 신작 패키지 게임들이 빼곡히 정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들을 사러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면, 2년 후 패키지 게임이 완전히 소멸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위의 링크한 칼럼에서 DL 게임이 콘솔 시장을 지배할 이유로 든 '스트리밍 게임'이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DL 방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패키지 게임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든 '정품' '패키지 게임'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 에뮬레이터나 게임사에서 정발한 복각 게임기 대신 꿋꿋이 실기 플레이를 하는 사람, 그리고 DL은 죽어도 안 사고 패키지로 구매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째서 여러 가지 편의를 포기한 채 구닥다리 게임기를 고집하고, 꿋꿋이 패키지 게임을 모으는가? 글쓴이는 유명 레트로 게임 카페에 이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 글을 올려, 24명의 카페 회원에게 이에 대한 대답을 들었다. 공통점 몇 가지를 추려 굵직한 이유들을 정리해보았다. ('복돌은 도둑질이니까!' 같은 답변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므로 배제했다)

 

 

● 감성이 중요하니까!

패미콤부터 닌텐도 64까지, 그 시절 레트로 기기를 모두 즐길 수 있어 고전 게임 덕후들의 성지로 불리는 레트로 카페 트레이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던 의견은 '실기 게임기, 패키지 게임만이 갖는 감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댓글을 남겨준 고전 게임 카페 회원 중 한 명은 지금까지 음악도 CD 플레이어로, 영화도 DVD 및 블루레이로 감상한다고 밝혔다. 카트리지나 디스크를 콘솔에 삽입하고 게임을 실행하는 수고로움까지가 게임의 일부이자 콘솔의 매력이라는 의견도 존재했다. 실기 게임기를 고집하고 패키지를 모으는 이들에게 있어 게임은 단순히 즐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저 지켜만 봐도 행복한. 감성을 자극하는 물건인 것이다.

 

특정 게이머들에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감성'이 이들에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어렸을 때 콘솔 게임을 가지고 놀았던 추억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인 듯했다. 한 카페 회원은 "국민학교 때 패미컴과 재믹스를 텔레비전의 RF 단자에 연결해 플레이해왔던 추억이 있다"며 "게임을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게임을 하기 위해 TV와 모니터에 게임기를 연결하는 과정도 즐겁다. 그 시절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렇기에 꾸준히 실기를 고집한다"라고 이야기했다.

 

 

● 20년 전의 나에게 주는 선물

부러움은 집념의 불씨를 만들었다.

기분 좋은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패키지 게임을 모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결핍의 기억이 게임 수집의 동기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카페 회원은 "어렸을 적 게임기를 가져보지 못한 경험 때문에 실기를 훨씬 좋아하게 된 듯하다"고 말했다. "가지지 못해 생긴 갈증의 해소와 능력 인정"이라 답한 사람 또한 존재했다. 이들 중에서는 심지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지만 패키지 게임은 모은다는 댓글도 달렸다. 그들에게 있어 실기 게임기와 패키지 게임은, 완성하지 못한 어렸을 적의 기억을 채우는 조각인 것이다.

 

7~80년대 출생자라면 잘사는 친구네 집 거실에 있었던 재믹스나 현대컴보이, 90년대 이후 출생자라면 닌텐도 DS나 Wii, 플레이 스테이션 2를 보고 부러워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글쓴이의 경우 친구네 집 텔레비전에 연결돼 있었던 플레이 스테이션 2, 언젠가 부잣집 친구가 3D로 슈퍼 마리오를 플레이할 수 있다며 자랑했던 닌텐도 3DS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플레이 스테이션 2는 무턱대고 사달라고 조르기에는 너무 비쌌기에, 그리고 닌텐도 3DS는 더 이상 게임을 사달라고 조를 나이가 아니었기에 기억의 저편에 묻었던 기억이 난다. 레트로 카페 회원들의 댓글을 보고 있자니, 지난 2년간 콘솔 게임 구매에 열중했던 것은 그 기억을 파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 정품 게임팩에만 존재하는 이데아가 있으니까(?)

게임보이와 비슷한 외형에 게임 플레이에도 문제가 없으며 심지어 백라이트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게임보이로 젤다를 플레이하는 것만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몇몇 재미있는 의견 중 하나는 바로 '플레이하는 맛이 틀리다'는 것이었다. 게임보이 어드벤스 유저로 보이는 한 카페 회원은 정품 팩으로 플레이할 때의 그 맛이 있다며, 정말 귀한 게임이거나 구하지 못하는 게임만 에버 드라이브(GBA용 닥터 칩)를 사용해 플레이한다고 말했다. 에뮬레이터와 실기 게임기라면 서로 간에 하드웨어적 차이가 존재하니 그렇다고 쳐도, 똑같은 게임기로 플레이하는데 정품 칩을 넣고 플레이할 때의 닥터 칩으로 플레이할 때의 퍼포먼스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재미있는 게임이 뭔가의 물리적인 아이템으로 표현된 것이 게임 실물 디스크라고 보면 된다"는 댓글도 달렸다. 그러니까, 정품 게임 디스크에 뭔가 아우라가 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댓글들을 보며 플라톤의 모방론이 '왜 실기, 패키지를 구매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톤은 침대를 예로 들어 목수가 만든 침대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불변의 침대를 모방한 것이며, 화가 혹은 시인이 글과 그림으로써 표현한 침대는 모방의 모방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문학과 그림은 진리의 세계로부터 3단계나 동떨어져 있는 현상의 모방으로, 배낌으로써 열등한 것을 또다시 배껴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를 게임에 대입하자면 정품 패키지 게임은 게임사에서 갓 제작한 원본 게임 파일에서 파생된 것으로 아직은 이데아를 갖고 있지만, 복사 게임팩 혹은 닥터 칩의 게임은 불완전한 것을 또다시 베껴 아우라가 남지 않게 된 쓰레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게이머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아님 말고.

 

 

● 완벽히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 실기이므로

레트로 게임 동호인 사이에서 에뮬과 실기의 차이는 먼 옛날부터 논의되어 왔던 문제이다.

감성을 떠나 기술적으로 생각했을 때 결국 완벽히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 실기 게임으로 플레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오늘날 에뮬레이터 게임기가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기는 하지만, 화질과 음질, 타이밍(인풋렉), 주변기기 등 여러가지 이유에서 실기를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의견을 남긴 카페 회원은 "음알긍로 비유하자면 실기는 무손실 원본 파일 혹은 원본 음반, 에뮬은 mp3 파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옛 하드웨어일수록 실기와 에뮬간의 차이가 크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에뮬 게임기들이 유독 슈퍼패미콤 구현에 애를 먹는 건가

 

 

 

2020년대에도 우리는 패키지 게임으로부터 로망을 자극받는다.

냉정히 봤을 때 패키지 게임이 편의성, 공간의 용이성 등 여러 측면에서 DL 게임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지지부진한 클라우드 게임의 개발이 진척되어 인풋렉 문제가 해결되는 수준에 이른다면, 패키지 게임 시장의 파이는 더욱 좁아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패키지의 로망을 꿈꾸는 게이머들이 있기에, 패키지 게임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 덕분에, 만들지 못한 추억을 위해, DL게임에는 없는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등등... 여러 이유로 패키지 게임을 구매하는 이들은 게임 시장에서 가장 큰 돈을 사용하는 3~40대 청년층이다. 그러니 2030년대 이후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10년 간 패키지 게임 시장이 사라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