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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책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2021)

  책 제목만 보고 오늘날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이 정치가 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혐오와 차별이 '어떻게' 정치가 되는지 설명해주는 책은 아니다.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이 혐오와 차별을 정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려버린 뒤 그들의 역사에 대해 기술하는 책이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을 덮은 뒤 아무리 생각해봐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목을 자극적으로 바꿨을 것 같아 찾아보니, 원제는 한역판과 전혀 다른 <The Far Right Today>였다.

  일련의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내가 제목만 보고 호기심이 들어 책을 주문하기는 했고 또 내용 또한 정치에 대해 다루는 서적 치고 딱딱하지 않아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가십거리 소비형 유튜브 채널식 제목 짓기가 아닌가. 자극적인 소재를 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에 대해 비판적인 스탠스로 바라보는 책의 이름을 자극적으로 바꿔 붙이는 것만큼 너무한 행동도 없다.

 

  비록 표지에서부터 던져놓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했지만,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해 시사 이슈 팔로잉에 애를 먹던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를테면 좌익과 우익이라는 단어가 프랑스 혁명 때 프랑스 의회에서 절대왕정체제를 찬성하는 국왕 지지파가 우측, 민주화 및 국민 주권을 주장하던 반대파가 좌측에 앉은 데서 유래됐다든가. ‘극단우익이 민주주의의 본질인 국민주권과 다수통치 자체를 거부하는 한편 급진우익은 민주주의의 본질은 수용하나 법치·권력분립·소수권리 등을 반대한다든가. 스킨헤드가 처음부터 인종차별 단체로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1960년대 런던 중산층의 히피 하위 문화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대안문화로 등장했다든가 하는 것들.

  저널리즘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인지 언론이 극우의 사소한 활동도 거대한 움직임으로 포장해 판매한다라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태극기 부대 등의 단체에 포커스를 맞추던 언론과, 이에 낚여(?) 극우 지지층에 올인(하고 망)했던 미래통합당의 모습이 생각났다. 오늘날의 한국 언론이 연일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보도를 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마치 오락을 중계하듯이 보도하는 것도, 물론 타당한 이유에 근거한 비판적인 관점에서 사회 현상을 지켜본다는 이유도 있겠지마는 어느 정도는 그렇게 보도해야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잘 팔리니까라는 의도가 있지 않을지? 다만 확실한 것은, 처음부터 조회수나 판매부수 따위를 의식하며 기사나 보도 따위를 기획하는 행위는 결국 양질의 저널리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극우 지지자층의 정형화되고 전형적인 모습이 인종차별을 서슴치 않는 형태를 한 고령백인이라든지. 이 책을 구매한 이유는 그들이 인종차별을 서슴치 않는 이유였는데, 끝까지 혐오와 차별의 원인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들지를 않으니. 마치 짜장면을 시켰더니 간짜장이 나온 듯한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