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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책

우리야구 2021년 3월+4월호 (제6호)

 

SNS 지인에게 운 좋게 우리야구 제6호를 받았다. 지난 과월호를 상당히 재밌게 읽었기에 이번 잡지도 은근히 기대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유익한 내용으로 꽉 차 있었다. 혼자 밑줄 치고 공책에 감상문을 쓰는 데 그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블로그에도 인상 깊었던 구절과 느꼈던 생각을 끄적여본다.


김광영 천안북중 야구부 감독 "삼진 먹어! 초구부터 쳐! 볼 쳐도 돼!"

 

  아마야구에서 알류미늄 배트가 아닌 나무 배트를 사용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 괴물 신인이 쏟아져나오기 전인 2010년대 중반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좀처럼 '거포 신인'이 등장하지 않았다. 특히 2010년대 초반에는 배영섭(2011년, 홈런 2개)부터 시작해서 서건창(2012년, 1홈런)을 거쳐 박민우(2014년, 1홈런)까지, 교타자 신인이 연이어 신인왕을 받았을 정도였다(2015년 신인왕 구자욱은 11개의 홈런을 쳤지만 역시 거포 타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상을 이유로 들며 '아마야구에 다시 알류미늄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히 많았다.

  김광영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아마추어 선수들이 '장거리 타자'가 아닌 '교타자의 길'을 걸었던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었다. 김광영 감독은 "아이들은 폼을 교정하는 것보다 멘탈 쪽으로 잡아주었을 때 더 영향력이 있었다"며 "선수생활을 할 때 타석에서 폼을 굉장히 많이 신경썼다. 폼만 만들다 선수생활이 끝났다. 공은 몇 초도 안 돼서 들어오는데 타석에 들어가서도 폼만 생각하고 있으니 공을 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불펜투수보다 선발투수의 육성이 더욱 어렵듯, 교타자보다 홈런 타자를 육성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고교 레벨에서든 프로 레벨에서든 담장을 넘기려는 의도의 커다란 스윙은 많은 공을 배트가 아닌 포수 미트에 충돌하게끔 만든다. 헛스윙이 많은 타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폼을 수정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광영 감독이 위에서 언급한 멘탈적인 문제까지 겹쳐 더욱 헤매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아닐까?

 

 

스윙만큼 중요한 타자의 멘탈프로세스

 

  송지만 KIA 타이거즈 코치, 최원준(KIA), 홍창기(LG), 류효상 야간도주 팟캐스트 멤버가 참여한 인터뷰는 위의 생각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었다. 최원준은 "예전부터 삼진을 먹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보니 초구나 2구에 원하지 않는 공이 들어오는데도 나도 모르게 배트를 내서 '툭' 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송지만 코치 또한 "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와 치지 말아야 하는 코스를 구분하는 거싱 먼저인데 '삼진을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으면 그게 잘 안 된다. 그러다보면 이 공 저 공 다 쫓아다니다가 파울이 되고 헛스윙을 하며 오히려 불리한 카운트에 몰리게 된다. 삼진을 당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할수록 삼진율이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생기게 된다"고 말한다.

  이 좌담을 읽으면서 자꾸만 상무 피닉스로 떠난 임병욱이 눈에 어른거렸다. 임병욱은 데뷔 2년차까지만 해도 호쾌한 어퍼스윙으로 "이병규의 재림을 보는 것 같다"는 평을 들었던 선수였는데, 2018년부터는 정반대 스타일의 타자가 되었다. 죽어도 삼진으로 죽고 뜬공으로 죽던 타자가 어느 순간 땅볼쟁이로 변모했다. 2016년까지만 해도 뜬공의 비율이 땅볼보다 훨씬 높은 타자였는데(키움 FO/GO 2015년 1.40, 2016년 1.47), 2017년부터는 최원태, 요키시도 울고 갈 땅볼러가 되었다(키움 FO/GO 2017년 0.29, 2018년 0.65, 2019년 0.70, 2020년 0.31). 일반 팬으로서는 자료를 구할 수 없었지만 아마 타구 발사각도도 함께 꼴아박았을 거다.

 

 

 

(자료 출처 : 스탯티즈)

  어느 순간부터 '서건창이랑 발사각도좀 맞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임병욱. 그의 부진에는 분명 심리적인 요인이 존재하지 않을까? 2016년까지만 해도 60% 초반대에 머물렀던 임병욱의 컨택율은 (뜬땅 비율이 역변하기 시작한) 2017년부터 70%대까지 올라왔고, 사실상 직구 외 아무런 공도 건드리지 못하던 수준이었던 구종별 타율 및 contact% 또한 봐줄만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2016년에 직구만 쳐서 홈런을 여덟 개나 쳤다는 것도 진짜 대단한 기록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킹리적 갓심이 들 수밖에 없지 않나? 변화구 맞추겠다고 타격폼 바꾸다가 OPS 0.8도 못찍는 타자가 되어버렸다는 게.........

 

 

더스틴 니퍼트 "즐기면서 하면 배우는 게 없다는 건 오해"

 

  야구적인 면에서는 딱히 별 감흥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생각할 점이 많은 인터뷰였다. 니퍼트는 "아이들은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수록 더 많이 배우고 싶어 하고, 실제로 더 많이 배우며, 배움에 더 배고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어린 선수들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며 "아이들은 똑같은 연습을 몇 시간 동안 반복해서 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치게 된다. 아이들의 몸은 닫히게 되고, 스스로를 속이는 다른 동작들을 하게 된다. 기본기라는 면에서는 좋지 않은 동작이다"고 말한다. 어느 분야의 교육에서든 통용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