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봄의 계절. 삼성 라이온즈 프런트에서 근무하는 아는 분께 우연히 테이블석 티켓을 선물 받게 되었고, 그 티켓의 경기일자가 오늘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대구 -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들렸다!
대구 구장에는 고속버스를 타고 동대구역까지 간 후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건너편에서 시내버스 937번을 타 대공원역에서 하차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처음에 인터넷에서 대중교통을 통해 라팍까지 가는 법을 검색해 읽었을 때는 중간에 헤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가는 길에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은 아재들이 많았기 때문에 초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갈 수 있었다.
부산의 사직 구장이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들뜨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분위기를 조성해 놓은 곳이라면,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는 그런 점에서는 조금 떨어지나 웅장한 외관으로 앞으로 눈 앞에 펼쳐질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물씬 키워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름에 대구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처음 라팍 앞에서 내렸을 때 콘크리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범상치 않은 열기에 깜짝 놀랐는데, 이런 열기가 라팍의 위압감을 더욱 키워주는 듯했다.
라팍 경기장 안에 입장한 직후 통로 앞에서 찰칵~! 라팍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운데에 전광판이 없는 구장이라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늘 삼성 라이온즈는 디즈니와 함께 라이온즈 킹 이벤트를 열었고 이로 인해 세계 합창 올림픽 2관왕에 빛난다는 쇼콰이어 그룹 '하모나이즈'도 경기장을 방문해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선수들 또한 디즈니와 삼성 라이온즈 구단이 함께 콜라보레이션 제작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었는데, 이 유니폼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해 약 일주일 전부터 여러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화제가 된 바가 있어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다.
라이온즈 데이의 서막을 연 선발투수 저스틴 헤일리는 1회부터 볼넷을 허용하고 SK 와이번스의 4번 타자 제이미 로맥에게 적시 2루타를 허용하는 등 부진한 끝에 4이닝 7피안타 4사사구 6실점으로 무너졌다. 이로써 최근 다섯 경기 중 5이닝 미만 소화 경기만 세 번이나 된다.
오늘 경기장에 올 때 버스에서 삼성니폼을 입은 아재들끼리 "오늘 선발 포수가 김도환이랩니더.", "김도환에 헤일리면 필패 아이가?" 따위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는데, 아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뒷자리 아재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 헤일리를 욕하다 속이 터지셨는지 나중에는 SK의 득점을 기뻐하기에 이르셨다.
이전에 프런트와 헤일리 본인 모두 실력에 비해 좀처럼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답답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는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음에도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팀 성적을 생각하면 조만간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를 보며 SK가 정말 짜임새 좋은 팀임을 느꼈다. 작년처럼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팀을 침몰시키는 야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강했다. 4회초는 왕조 시절의 SK를 연상시키는 공격이었다. 감 좋은 타자가 상위타선에 배치되어 안타를 치고 출루한 뒤 상대팀 포수가 미숙하다는 점을 이용해 곧바로 도루를 성공시키고,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타자가 카운트를 충분히 끌고 간 뒤 주자를 3루로 진루시키는 땅볼을 치고, 7번타자가 시프트를 뚫고 타구를 보내 가볍게 1득점. 흠 하나 없이 깔끔한 작전야구를 보며 마치 김성근 시절의 SK가 떠올랐다.
오늘 경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8점 차로 지고 있음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응원가를 열창하는 삼성팬들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그저 악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팬들은 정말 자신들이 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 중인 그 순간을 즐겼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만 같았다.
9회말 응원 때(https://youtu.be/iXJAQA-WHDk) 팬들의 응원은 흡사 어느 남미 국가의 축제 기간에 온 것만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무도 안 읽는 키움 리뷰글이나 쓰는 야구 너드인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벌떡 일어서서 최강 삼성을 열창할 정도였다. 결국 경기는 7점 차로 패배했지만, 피곤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경기장에 갓 도착했을 때만 해도 어제부터 유난히 쑤시기 시작한 어깨와 지끈지끈한 이마를 부여잡고 골골댔는데, 경기장에서 나올 때는 몸이 가뿐했다. 나도 어느새 대구인들의 뜨거운 야구 사랑에 중독됐던 것이다.
일정을 찾아보니 두 달 후에 키움과 삼성 간의 2연전 일정이 있다. 그때 한 번 더 라이온즈 파크를 방문해야겠다. 이번 여름의 목표는 각 구장을 한 번씩 가보는 것이었지만, 이번 한 번 만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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