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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소프트웨어

하찮은 요소들이 모여 사랑받는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전문지가 아닌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동물의 숲을 주목하고 있다. 이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 이후 7년(한국 정발 기준)만에 출시된 신작,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서는 첫 주에 패키지만 180만 장을 넘게 팔아치웠으며, DL판까지 감안하면 첫 주 판매량만 250만 장이 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서구권에서도 아마존 게임 분야 4위, 북미 닌텐도 E숍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중이다. 단언컨대, 지금 전세계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다.

 

콘솔 게임 험지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동물의 숲과 함께 출시된 '닌텐도 스위치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에디션'의 경우, 한정판이 아님에도 웬만한 한정판 기기보다 구하기 어려웠다. 예약구매만 해도 온라인에서는 각 쇼핑몰 사이트에서 수강 신청을 연상케 하는 접전이 벌어졌다. 지난 20일 발매 당일날에는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동물의 숲 에디션 70대를 추첨 방식으로 판매하자 3000여명이 몰려 화제가 되었다.

 

어느 게임 커뮤니티를 가든간에 전부 다 동물의 숲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게임과 조금도 상관 없는 커뮤니티에서도 '동숲에서 00팀 유니폼 만들어 봤다' 같은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SBS, 중앙일보 등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게임의 인기에 대해 앞다퉈 조명하고 있는 상황. 이쯤 되면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게임에 별다른 목표는 없다. 아무런 긴장감도 주지 못하는 하찮은 요소만 모여있을 뿐. 그런 동물의 숲은 2020년 상반기에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물의 숲은 커녕 게임에 별 관심이 없었음에도 스위치를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고민과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을 품는다. "그래서, 도대체 동물의 숲이 뭐 하는 게임이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뭔가 마을 주민이라는 동물들과 소통하고, 빚을 갚고, 낚시를 하고, 자기 옷을 디자인하는 등의 모습이 올라온다. 이런 컨텐츠가 재미있어 보이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결국 게임의 목표는 무엇이냐, 어떤 장르의 게임이냐는 것이다.

 

돌아오는 대답 또한 전부 똑같다. "그냥 그게 전부인 게임이야".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비롯한 동물의 숲 시리즈에는 이렇다 할 엔딩 컨텐츠가 없다. 너굴에게 빚 갚기? 사실 집 증축을 원치 않는다면 대출을 상환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자도 늘어나지 않으며, 독촉도 당하지 않는다. 마을 발전시키기? 이 또한 부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살기 위해' 낚시나 농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해서 캐릭터가 아사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NPC들과 대화를 나누며 친해지고, 한가롭게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어쩌다보니 모인 재료를 갖고 가구를 만들어 친구에게 선물하는. 다른 게임이었다면 잘 쳐줘야 부가 요소이고 나쁘게 취급하면 '하찮은 요소'였을 것들이 합쳐진 게임. 그게 바로 동물의 숲 시리즈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동물의 숲을 켜고 '하찮은' 컨텐츠를 즐겁게 소비한다.

 

 

 

그 모든 일이 있었기에 플레이어는 스스로의 손으로 일궈낸 자신만의 동물의 숲에서,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하찮은 컨텐츠들을 즐겁게 플레이하는가? 윤호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는 <중앙일보> 박민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가상으로 쉽게 성취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는다"며, "다른 사람(타 플레이어, 동물)들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는 등 두 가지(성취,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킨다"고 설명했다. 

 

동물의 숲에서 플레이어가 소비하는 모든 컨텐츠는 그 즉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꽃에 물을 주고 나무를 심는 등의 행동은 섬의 평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섬의 평판이 좋아져 별 다섯 개를 받게 되는 날에는 '나빗보벳따우'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T.K가 자신의 섬에 공연을 오게 된다. 낚시를 하고 잠자리채를 휘둘러 잡은 물고기와 곤충은 다양한 쓰임새를 갖고 있다. 어항에 담아 인테리어 용도로 전시할 수도 있고, 상점에서 판매할 수도 있다. 처음 잡은 생물은 너굴에게 줄 수 있다. 그러다보면 고고학자 부엉이 플레이어의 섬에 흥미를 갖고 이주해 연구 텐트를 차리며, 이후에도 기증이 계속되면 부엉의 연구 텐트는 으리으리한 박물관으로 발전한다. 이외에도 동물과 잡담을 나누고 집을 꾸미는 등의 모든 행동이 또다른 컨텐츠로 연결된다.

 

하찮은 컨텐츠들을 소비해왔기 때문에, 캠핑용 텐트에서 어엿한 사무실로 발전한 마을회관이 섬 한가운데에 우뚝서있는 것이다. 전시품을 감상하는 데만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박물관, 오늘도 반갑게 플레이어를 맞이해주는 동물들이 있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돌아다니는 섬은 그들이, 낚시를 하고 꽃과 나무를 키우며 동물과 잡담을 해왔기에 완성될 수 있는 장소이다.

 

 

 

적어도 '모여봐요 동물의 숲' 안에서만큼은 그 어떤 작은 행동도 헛된 일이 아니다.

작년 초, 모동숲의 전작인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을 3500시간 넘게 플레이해 화제가 되었던 87세 게이머가 있었다.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의 집이 생각나서' 동물의 숲을 시작했다는 오드리 할머니. 그녀는 동물의 숲에서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 무엇이냐는 <인벤> 기자의 질문에 "조그마한 동물들을 돕는 것이 즐겁다. 가끔 동물들이 과일을 부탁하러 올 때가 있어 미리 준비해놓는다"고 답했다.

 

그래서일까. 오드리 할머니는 최근 손자에게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선물 받았음에도 여전히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고 있다. "마을에 있는 주민들도 꾸준히 만나야 하고 꽃에 물도 줘야하니까" 그만둘 수가 없댄다. 몸이 불편한 아들을 돌봐야하느라 '한 번에 많이'가 아니라 '매일 조금씩' 게임을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는, 마을을 가꾸고 동물을 도와주는 행위가 게임을 그만둘 수 없는 메인 컨텐츠가 된 것이다.

 

어떤 유저에게는 신경쓸 겨를도 없는 사소한 것들이, 지구 정반대편의 누군가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러니 적어도 '동물의 숲' 안에서만큼은 그 어떤 작은 행동도 헛된 일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동숲을 플레이하는 당신에게는 어떤 것이 메인 컨텐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