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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소프트웨어

[르포] 'MZ 세대'의 '메타버스' 속 대선캠프 관람기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검색결과 갈무리)

   하루가 멀다하고 'MZ세대', '메타버스'와 같은 단어가 언론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의 트랜드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MZ세대'와 '메타버스' 분야를 주시 중이고, 정치인들도 유권자를 사로잡기 위해 친'MZ', 친'메타버스'적인 모습을 보이려 합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공공기관 중에서 가장 경직되어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군대에서조차 'MZ세대'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MZ세대'와 '메타버스'는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일까요?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와 Z세대(Z Generation)를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 사이에 출생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며, Z세대는 1996년에서 201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2021년 기준으로 10대 청소년부터 40대 초의 장년층을 뭉뚱그려 MZ세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메타버스'는 '초월'이라는 의미의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 합성어입니다. 한경닷컴의 칼럼에 따르면 1992년 미국 SF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해당 소설에서 사람들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가상의 신체인 아바타를 빌려 활동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메타버스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컴퓨터 코딩을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와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가상현실 게임 'VRChat'부터 '메이플스토리'와 같은 게임까지, 모두 메타버스에 해당합니다.

 

  평소 위의 용어들이 친숙한 사람이라면 굳이 이를 풀어서 설명할 필요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MZ세대'와 '메타버스'를 주제로 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정확한 의미를 설명해야만 합니다.

 

 

 

진짜 'MZ 세대', 그리고 '메타버스 이용자'들은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의 주 이용자인 10대~30대의 'MZ 세대'는 자신들이 그런 단어로써 호칭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언론이나 논문을 통해 명확한 통계로서 증명된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당장 주변의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청년에게 '너는 MZ 세대다'라는 말을 꺼내 보십시오. 열에 다섯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이, 그리고 서넛 정도는 별 늙은이 다 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입니다. '메타버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MZ 세대'와 '메타버스'는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동시에 결코 친숙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MZ 세대'에 포함되는 이들은 해당 용어를 사용하기는커녕, 자신이 특정 세대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메타버스'에 해당하는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즐겨 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게이머가 '나는 나의 아바타를 통해 실제 현실과 같은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라는 의식을 갖고 게임을 플레이하겠습니까?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보면서 '나는 뉴미디어를 이용 중이다!'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니 'MZ 세대'와 친해지기 위하여 대화 주제로 'MZ 세대', '메타버스' 같은 이슈를 꺼내는 것은 되려 그들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젊은 센스를 유지하고 있음을 뽐내기 위해 유행어를 남발하는 부장님보다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당장의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니 그깟 체면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갈무리)

  하지만 아무래도 정치인들에게 있어 'MZ 세대'와 '메타버스'라는 신흥 유행어(?)는, 2030 청년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황금 열쇠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수많은 대권 잠룡들이 'MZ 세대'의 주 관심사를 적극 활용하며 자신을 어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유튜브 채널 '최문순TV'에 자신의 부캐 '최메기'로 분장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업로드했습니다. 박용진 의원은 틱톡에 걸 그룹 브레이브 걸스의 노래 '롤린'에 맞춰 춤을 추는 상황극 영상을 올렸습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롤파크 경기장에 방문해 인기 E스포츠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했으며, 정세균 전 총리도 독도를 알리겠다는 취지의 틱톡 영상을 올렸습니다.

  세대를 초월한 이들의 노력은 과연 청년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을까요? 인터넷 반응만 살펴봤을 때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자신의 부캐릭터로 노래를 부른 영상은 2021년 7월 2일 오후 7시 기준 158개의 좋아요와 263개의 싫어요를 기록 중입니다. 박용진 의원이 '롤린 사건의 전말'이라며 유튜브에 업로드한 영상은 싫어요 수가 좋아요보다 10배가량 많습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틱톡에 영상을 업로드한 이후 '외국의 유명 영상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작은 구설수에 휘말렸습니다. 유일하게 이낙연 전 대표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 영상만이 싫어요보다 많은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위의 문단을 작성하다가 제 옆에서 컵라면을 먹던 01년생 'MZ세대'에게 박용진 의원이 롤린을 추는 영상, 정세균 전 총리의 틱톡 영상을 보여준 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습니다.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 01년생 'MZ세대' 친구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정알못'입니다. 정치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청년들이 TV를 통해 "국회의원이 MZ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소식을 접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요. 제가 방금 물어본 친구와 비슷한 반응이 돌아올 듯합니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채널 <이낙연TV> 갈무리)

  어쩌면 위의 이야기들이 크게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는 매우 뼈저리게 와닿았습니다. 지난 총선 때 몇몇 국회의원 후보들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놓았던 탓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상현실 플랫폼 <제페토>를 통해 출마 선언을 예고한 유튜브 영상이 알고리즘 추천을 통해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봄, 정치 1번지 종로 선거구에서 미래통합당의 수장 황교안 전 대표를 상대로 매우 침착히 완승을 거두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랬던 분이 이제는 MZ 세대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낮은 품질의 폴리곤 덩어리가 되어 가상 현실에서 셀카는 못 참겠다며 셀카봉을 들고, 기분이 매우 좋다면서 가상현실 공간을 뛰어다닙니다. 대다수의 MZ 세대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낙연 전 대표를 지지하고 있는 MZ 세대도 원치 않을 것만 같은 영상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이낙연 전 대표의 제페토 진출 관련 보도를 찾아보기 위해 구글링을 하던 도중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제페토라는 플랫폼을 통해 선거 운동을 시도한 정치인이 이낙연 전 대표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23일까지 제페토를 선거 운동에 활용한 대선 주자는 4명에 달합니다. 5월 30일에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업글희룡'이라는 닉네임으로 가장 처음 제페토에 가입했고, 이광재 의원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롤린 댄스'를 춘 박용진 의원은 아예 제페토에서 대선 캠프를 출범식을 열었습니다. 당시 박용진 의원은 "박용진 캠프는 큰 사무실, 의전, 줄 세우기와 같은 세 가지가 없다"며 "대한민국의 시대 교체,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출범실"이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이미 대권 주자의 제페토 계정 만들기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대체 이들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하나 갖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설치해봤습니다. 제페토.

 

 

 

원희룡 지사 정도면 나름 야권에서 경쟁력 있는 대권 잠룡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팔로워가 낮습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보좌진으로 예상되는 공직자)가 제작한 맵이었습니다.

 

 

 

수많은 원희룡 제주도지사 지지자들이 한데 모여 웃고 떠들며 경선에서의 승리를 다짐하는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접속했을 때는 저 혼자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제페토>의 이용자 80%는 10대 청소년이라고 합니다.

 

제아무리 원희룡 지사를 지지하는 이들이라고 해도, 세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꾸준히 제페토에 접속하는 것은 힘들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갓 맵을 만들었을 당시에 지지자들과 하하호호 담소를 나누기 위해 만들었을 연회장입니다.

 

제가 접속했을 무렵에는 정적만이 맴돌 뿐이었습니다.

 

 

 

이곳은 아마도 기자회견장인 것 같습니다.

 

제페토는 위 스크린샷과 같이 자신만의 세계에 이미지 파일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를 굉장히 많이 잡아먹습니다. 30분 정도 접속하고 있으면 1GB 정도가 소진되는 듯했습니다.

 

 

 

콘서트장도 있고 개인 사무실도 있었습니다.

 

<제페토>의 개인 월드에는 최대 100명까지 동시 접속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전당대회도 제페토를 통해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제가 이 글을 쓰게 만든, 그리고 제페토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게 만든 이낙연 전 대표의 맵입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팔로워, 맵 방문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접속 중인 사람이 굉장히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스크린샷을 촬영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들어와, 나중에는 스무 명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다섯번만봐도인연'이라는 닉네임의 '올 블루 드레스코드' 유저도 있었습니다.

 

과연 이들은 모두 이낙연 전 대표의 지지자인 것일까요?

 

지지하는 정치인의 소중한 메타버스 공간을 지키기 위해, 휴대전화 배터리와 모바일 데이터를 희생해 제페토에 접속 중인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제페토>의 주 이용자인 10대 청소년인 듯했습니다..

 

그저 가상현실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 인기 월드인 이낙연 월드에 접속한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정치인들이 예전과 같이 민중을 한곳에 모아 연설을 하지 못하고 '메타버스' 등을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집에만 머무르고 있을 10대들은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는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로 '메타버스'를 택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대선 운동용 사이버 공간이, 지금 어른들의 어린아이 시절 아파트 단지 놀이터 역할을 대신 하고 있는 셈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렇다면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코로나라는 커다란 재앙을 만나지 않은 우리네의 어렸을 적 기억에는 놀이터에서 친구와 놀던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쉬는 시간 복도나 교실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점심시간에는 다 같이 똑같은 급식을 먹고, 학교가 파하면 운동장이나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모여 술래잡기나 팽이치기, 딱지치기 따위를 하던 추억이 말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보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그러한 추억이 없습니다. 대신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 텅 빈 집에서 태블릿PC나 컴퓨터로 비대면 수업을 듣고, 홀로 끼니를 챙겨 먹고, 수업이 끝난 뒤 휴대전화로 <제페토>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이낙연의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에 접속한 추억만이 생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퇴근한 부모님께 안겨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냐는 말에 "이낙연의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에서 놀았어!"라고 대답하는 추억이...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인가요?

 

 

 

(이미지 출처 : 경향뉴스)

  오는 2학기부터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의 전면등교가 가능해집니다. 1년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사회화를 경험하고, 유년기의 소중한 추억을 쌓을 권리를 박탈당했던 이들이 비로소 그 소중한 보물을 돌려받는 셈입니다. 다만 조건이 붙습니다. 한 주 동안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1천명 미만이어야 합니다. 한주 평균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가면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4분의 3, 중학교는 3분의 2, 고등학교는 3분의 2 밀집도 기준을 준수하면서 등교해야 합니다. 2000명을 넘기면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됩니다.

  금일 신규 확진자 수는 826명으로 3차 대유행 이후 6개월 만에 최다 수치였습니다. 지난 이틀간 700명대 확진자가 나왔기에 '어쩌다 하루 많이 나온 수준'이 아닙니다. 어쩌면 백신 접종이 가속화되어 긴장의 끈히 느슨해지는 상황 속에서 4차 대유행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집단 면역이 형성될 때까지만 조금 더 방역수칙 준수를 성실히 합시다... 애들이 학교도 못 가고 제페토에서 정치인들이 만든 맵에서 노는 일 만들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