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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소프트웨어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 : 게임과 동화의 완벽한 만남

지금은 여가 시간에 게임기 전원부터 켜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샵에 가서 충동구매를 하는 오타쿠지만

 

그래도 디지털 게임에 물들지 않았던, 집에서 동화책을 읽으며 놀았던 순수한 시절은 있었다.

 

어렸을 적에 가장 좋아했던 동화책은 '메이지'였다.

 

이제는 너무나도 오래돼서 스토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잠들기 전 어머니께서 메이지를 읽어주시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메이지는 꽤나 인기 있는 동화책이었는지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되는 등 여러 책이 나왔는데

 

내 기억에 남아있는 메이지 동화책 중 하나는 바로 팝업북의 형태로 메이지의 집이 구현되어 있는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속 메이지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과 겹쳐보며 '메이지가 여기서 목욕을 했구나..' 따위의 상상을 하곤 했다.

 

 

 

동화책 올타임 원탑 오즈의 마법사.

요즘 애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 유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다들 동화책 속의 천진난만한 캐릭터 하나 즈음은 단편적 이미지로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있어 어린 시절 세상의 전부는 집과 유치원, 그리고 기껏 해봐야 놀이터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니

 

동화책은 그 좁디좁은 세상을 살아가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의 풍경을 보여줬기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까지 꾸준히 어린 유저층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테일즈런너

아직 게임을 플레이하기에는 너무 어린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의 경험을 시켜주는 동화

 

그리고 청소년 및 성인층에게도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벗어나게끔 해주는 디지털 게임.

 

이 둘이 만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이 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게임들이 적잖이 출시됐다.

 

 

하지만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와 나이를 먹은 지금 플레이하는 게임이 있는 그대로 만나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다.

 

어렸을 때 그 읽었던 그 모습 그대로의 동화를 소재로 사용하자니 성인층이 플레이하기에는 아쉬운 게임이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성인들이 플레이할만한 게임을 만드자니 엘리스 매드니스처럼 어린아이에게 권하기 힘든 결과물이 나온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엔딩을 봤던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는

 

성인 게이머는 물론 어린이에게도 망설이지 않고 플레이를 권할 수 있을 수준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어떤 리뷰가 올라와 있나 검색해보니 웬 유튜버가 똥겜이라고 음해한 영상만 뜨길래

 

혹시라도 이 게임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그 영상만 보고 발걸음을 돌릴까 걱정됐다.

 

이 게임은 결코 갈색 구정물이 아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이라면 그 독특한 풍미를 느끼며 즐길 수 있는 데자와같은 게임이었다.

 

 

#. '게임의 스토리'가 아닌 '동화의 이야기'

거짓말쟁이 공주와 어린 왕자는 컷신 하나하나가 마치 동화책의 한 페이지와 같이 되어있다.

 

나긋나긋하게 동화를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으며 귀엽고 몽환적인 그림체와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분명 게임의 스토리를 보고 있는데 십수 년 만에 동화책을 사서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보통 동화책 같은 게임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너무 밝고 가벼워 정말 어린 유저층을 타깃으로 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흔히들 '잔혹동화'라고 부르는 수준으로 비틂으로써 성인 게이머만을 겨냥하는데

 

이 게임이 품고 있는 동화는 어린아이도 울지 않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희망차면서도

 

결코 밝은 분위기 일변도는 아니기 때문에 성인 게이머도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서사를 진행하다

가련해 보이는 소년이 어째서 눈을 붕대로 가리고 있으며 공주의 실체가 무엇이고, 그들이 왜 기괴한 숲속을 거니는지.

 

서사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플레이어는 스토리에 쉽게 이입해, 공주로서(혹은 괴물로서) 왕자의 눈을 고치기 위해 숲속을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스토리 컷신뿐만이 아니라 인게임 그래픽 또한 동화를 그대로 옮겨온 것만 같기 때문에,

 

움직이는 팝업북을 읽는 듯한 감상에 빠져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무시무시한 늑대 괴물이 돼서 왕자를 위협하는 괴물을 해치울 수도 있으며

 

 

 

연약한 공주님의 모습으로 변장해 왕자의 손을 잡고 마녀의 집을 향해 이끌 수도 있다.

 

 

 

스테이지 중간중간 숨겨져 있는 꽃을 꺾어 왕자에게 선물해주는 등의 상호작용도 가능하다.

 

플랫포머 게임인 만큼 일방향 진행일 수밖에 없지만, 눈앞의 장애물보다는 왕자와 공주의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동화책을 읽을 때도 몽환적이거나 아름다운 배경의 가운데에 결국 주인공이 있음을 생각하면,

 

본 게임은 어떻게 해야만 게임을 살아 움직이는 동화책으로 만들 수 있는지 명확히 파악한 것이다.

 

 

#. 퍼즐 게임의 진입 장벽을 없애다

지난해 초에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잠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퍼즐 게임, 바바 이즈 유.

 

하지만 귀여운 그래픽과 상반되는 어려운 난이도로 인해, 그 열기는 퍽 오래 가지는 못했다.

 

중붕이는 머리 쓰는 게임 싫어해서 아예 사지도 않았다.

 

 

 

퍼즐 게임을 엄청 못하는 편인데 이 게임의 퍼즐은 별도의 공략을 참고하지 않고도 풀 수 있었다.

거짓말쟁이 공주와 어린 왕자는 스테이지 곳곳에 장치되어 있는 퍼즐을 풀어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의 플랫포머 게임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머리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라고 해도, 이 게임은 문제없이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과부하가 걸릴 만큼 머리를 굴리다가 게임의 이입을 못 하는 일이 없도록

 

갓난아기도 쉽게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로 퍼즐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퍼즐의 경우 겉으로 봤을 때에는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간단한 수수께끼이다. 하지만 겉으로 봤을 때에는 매우 어려워 보이니

 

'내가 엄청 어려운 퍼즐을 풀었어!'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퍼즐은 왕자가 죽기 전에 모든 괴물들을 죽여야만 하는 퍼즐이었다.

 

게임 속 괴물들은 모두 불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왕자가 들고 있는 전등에 불이 붙어있으면 괴물이 다가오지 않고

 

때문에 정확히 횃불 위에 떨어져서 왕자의 전등에 불을 붙여야만 했는데

 

안타깝게도 왕자와 괴물에게는 천리안 같은 게 없어 바닥 아래를 내려다볼 수가 없어

 

처음 한 번은 운이 좋지 않은 이상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퍼즐이었다.

 

이게 가장 어려운 퍼즐일 정도이니 이 게임의 퍼즐 수준이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왕자와 함께이기에 어려워지는 난이도

왕자가 아래로 내려가는 발판이 너무 높다고 생각해서 낙사한 모습

퍼즐이 쉬운 퍼즐 플랫포머 게임이라고 해서, 결코 난이도가 쉬운 것은 아니다.

 

이 게임은 반인반수인 공주 혼자가 아닌, 두부보다 부드럽고 잘 부서질 것 같은 왕자와 함께 나아가는 게임이다.

 

왕자는 조금만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고 높지 않더라도 내려가는 중인 발판에 떨어지면 죽고 어쨌든 뭐만 하면 죽는다.

 

이 이유 하나 때문에 게임의 난이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얼마나 가련한 왕자님이냐면 가끔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지구가 자전하고 있을 방향으로 질질 끌려가기도 한다.

 

 

#. 동화책 한 권을 읽는 듯한 분량

제아무리 분량이 긴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연작 소설이 아닌 한 네다섯 시간이면 모두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면 하루 안에 모두 집중해서 읽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는 엔딩까지의 플레이타임을 3~4시간으로 설정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이 스토리에 감정하는 데 방해받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이야기의 마지막 장까지 볼 수 있도록 배려해놓았다.

 

 

#. 고급 동화책

그 어떤 상품이든 그것의 가격을 보고 그것의 가치가 어떠할지를 지레짐작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의 개발사는 게임의 가격을 풀프라이스 급으로 설정함으로써

 

본 게임이 갖고 있는 '게임과 동화의 완벽한 결합'이라는 가치를 AAA 게임과 맞먹는 가치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은 '내가 값비싼 예술품을 플레이하고 있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몽실몽실하고도 거칠고 무거운 그림체,

 

분명히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는 스토리,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감정이입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의 플레이타임,

 

그리고 퍼즐 플랫포머 게임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의 놀라운 퍼즐 설계.

 

거짓말쟁이 왕자와 눈먼 왕자는 분명 잘 만든 게임이다.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게임'으로 취급하지 않을 사람들도 적잖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동화책 같은 그래픽의 퍼즐 플랫포머 게임을 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모바일에서 1.99달러, 스팀에서 10500원에 판매 중인

 

퍼즐도 재미있고 그래픽과 스토리도 동화책같은 갓겜 도쿠로를 플레이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