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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소프트웨어

[르포] 세금으로 만든 메타버스 블록버스터! 욱크래프트

[르포] 'MZ 세대'의 '메타버스' 속 대선캠프 관람기

 

 

■ 메타버스 진입 장벽 잔뜩 높여준 CF

  최근 YTN을 보고 있으면 지역 방송 시간에 굉장히 당혹스러운 광고가 나옵니다. 물론 온갖 쌈마이 지역 광고가 난무하는 곳이 케이블 채널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는 광고였습니다. 개그맨 서남용씨가 욱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황당합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츄리닝 차림으로 달고나를 핥고 있는 서남용 씨.

 

 

그런 서남용씨에게 광고 미팅 메시지가 오는데...

 

 

한껏 차려입고 나왔더니 선배라는 사람에게서 캐스팅이 끝났다며 안 와도 된다는 메시지가 옵니다.

 

 

본노한 서남용 씨는 십 몇 초 동안 욱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욱할 때는? 욱크래프트!"라는 캐치프라이즈와 함께 광고가 끝납니다...

  무엇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광고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저는 지난 몇 주 동안 이 광고를 서너 번 정도 봤지만 조금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욱'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달고나와 츄리닝 복장은 결국 영상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서남용 씨가 십 몇 초 동안 "욱!"을 외치는 장면은 안타깝게도 재미가 없습니다.

  워낙 황당한 광고이다 보니, 오히려 대체 무엇을 위해 만든 광고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도 게임 광고로 보이는데, 대체 뭐하는 똥겜이길래 게임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서남용 씨가 욱하는 모습만 보여준 것일까요? 어떤 돈 많고 기획력 없는 게임사길래 농림축산식품부의 이름까지 내걸고 이런 광고를 만든 것일까요? 한국의 스타트업일까요? 아니면 중국 기업일까요?

 

 

 

정답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직접 만든 광고였습니다.

 

아...

 

 

 

  TV에서 주구장창 CF를 틀어댈 정도로 예산을 쏟아부은 게임(?)인 만큼, 욱크래프트에 대해 홍보하는 사이트도 따로 있습니다.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농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욱크래프트의 목표라고 합니다. 욱크래프트와 관련된 공모전까지 따로 있습니다.

 

 

 

  서남용 씨가 나오는 의미불명의 CF 말고 다른 영상도 있었습니다. 다른 영상에서는 '아! 욱크래프트가 비대면 시대에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농식품 관련 정책 및 미래가치 콘텐츠를 체험하고 소개하기 위한 사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까 싶어, 다른 광고 영상도 시청했습니다.

 

 

 

욱크래프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CF 영상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영상에 달린 댓글의 반응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영상 속의 랩 가사도 중독적이고, 힙하고, 영상만 봐도 메타버스로 농업을 이해할 수 있어서 신난다고 합니다. 같은 영상을 본 것이 맞는지 의문이었습니다.

  2021년 12월 26일 기준으로 구글에 욱크래프트를 검색하면 각종 보도자료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업로드한 유튜브 영상만 나옵니다. 유튜브에서는 욱크래프트와 관련된 제3자의 영상이 단 하나만 나오고, 그마저도 조회수가 200을 넘지 못합니다. 몇 개월 동안 열심히 TV CF를 내보낸 것치고는 매우 처참한 홍보 효과를 맛본 셈입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서남용 씨가 달고나를 부수다가 광고 미팅이 캔슬돼서 욱욱 거리는 영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서 욱크래프트가 어떤 사업인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할까요, 아니면 정부 기관에서 준비한 메타버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까요?

 

  욱크래프트는 '개그맨 한 명 데려다 광고 찍어봅시다!'라는 아이디어가 통과한 순간부터 실패한 사업이었습니다. 

 

 

 

■ 처참한 광고에 비해 인상적이었던 메타버스 공간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채널 <이낙연TV> 갈무리)

  개인적으로 '메타버스'라는 신조어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작성했던 글에서도 언급했듯, 오늘날의 메타버스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 전부를 지칭합니다. 제페토나 VRChat 같은 게임까지 갈 것도 없이, 10~20년 전 유행했던 온라인 게임 리니지메이플스토리 등도 전부 메타버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메타버스는 어느날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기존에 존재했던 것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낸 '전문적으로 보이는 단어'일 뿐입니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학 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전문가처럼 보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새로운 용어를 쓰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15년 전에는 '유비쿼터스 시티'가, 그 이후에는 '스마트 시티'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유비쿼터스 시티와 스마트 시티가 얼마만큼의 권력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날의 10~20대에게 있어 '메타버스'란 전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념도 무엇도 아닌 허깨비일 뿐입니다. 그러니 정치인과 여러 기업이 메타버스에 집착하는 모습은 그들에 대한 반감만 일으키게 됩니다.

 

  제게는 과거에 지지했으나 이후 실망스러운 행보만을 보여주던 정치인이 메타버스에서 기분이 매우 좋다며 점프하는 모습을 보고, 해당 정치인에 대한 일말의 기대마저 접어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메타버스에 대한 반감 또한 큽니다. 욱크래프트는 얼마나 한심한 공간일지 궁금했습니다. 

 

 

홈페이지에 서버 접속 메뉴얼이 상세히 준비되어 있어서, 저처럼 마인크래프트에 익숙치 않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서버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홍보 면에서 처참히 망해버린 사업이기 때문에, 멀티 서버에 접속해봐자 단 한명의 유저도 없습니다.

 

 

욱크래프트 공식 멀티 서버에서는 맵 중간중간 비치되어 있는 지하철, 택시, 버스, 배 등을 통해 이동하고자 하는 곳으로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처음 멀티 서버에 접속하면 농림축산식품부 청사 옥상에서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실제 청사 건물과 똑같이 만들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편의점에 들르면 카운터 점원의 인사가 메시지로 나오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만들었을 포스터가 붙어 있는 등

 

디테일 면에서의 섬세한 고증이 돋보였습니다.

 

 

욱크래프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장소 중 하나는 '스마트팜혁신벨리'라는 지역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청사와 마찬가지로 실존하는 지역입니다.

 

 

  농업에 문외한인 사람을 앉혀다 보여줘도 이 맵을 통해 보여주고픈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든 지역이었습니다. 여기저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도 보였고, 농작물을 자동으로 수확해주는 기계도 있었습니다. 2020년대 들어 유행 중인 수직 농업 건물도 보입니다.

 

 

농산물도매시장과 유통센터도 있습니다. 유통센터는 텅 빈 건물이었습니다.

 

 

도매시장은 실제 도매시장처럼 인테리어를 해놓았습니다. 별도의 설명 없이도 농작물의 유통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농업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농업박물관도 있습니다.

 

수원화성을 지나 3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데, 2022년 7월에 개장할 예정인 국립농업박물관이 모티브인 듯합니다.

 

 

농업박물관의 내부 모습.

 

 

■ 결론 : 홍보만 잘 했다면...

  어이 없는 광고를 보고 비판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대충 둘러보는 데만 해도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 맵의 크기도 굉장히 넓고 디테일도 뛰어나서 놀랐습니다. 만약 서버에 사람이 많았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메타버스'를 어느 정도 간접 체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낙연의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나 원희룡의 '업글희룡월드'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텅 빈 건물이 너무 많습니다. 세세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 농업 홍보 사업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퀄리티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마인크래프트 맵에서 그 정도를 바라는 게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TV CF를 통해 열심히 광고하던 사업이며 관련 공모전의 총 상금이 500만원에 달하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의 정성, 그리고 예산을 쏟아부은 사업이라면 더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합니다.

 

 

광고가 너무 답이 안 나와서 말은 많지 않았겠지만 그 덕에 탈은 많았을 메타버스 농업 컨퍼런스 '욱크래프트'

 

아직 서버는 열려있으니 한 번쯤 접속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