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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소프트웨어

파이널 판타지 15 : JRPG의 시작과 끝

충격적인 결말로써 잘 만든 팬서비스성 영화에서 호불호가 극심히 갈리는 영화로 바뀌었던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

 

과연 스토리를 구상했던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은, 원작대로 밀드라스가 최종 보스로 등장했어도 평작 이상은 됐을 영화의 시놉시스를

 

무슨 생각으로 무리수까지 둬가며 비트려고 했던 것일까?

 

일단 킹무갓키에 의하면 감독은 "그 결말이 생각났기 때문에 영화화를 결심했다"라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30년이 다 되어가는 게임의 스토리를 그대로 필름에 옮겼다간 잔잔한 흥행 이상을 이끌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돈 아까운 마리오, 소닉겜 투탑.

게임에 있어서 평범함은 곧 식상함, 그리고 지루함이다.

 

아무런 특색도 없는 '무난한' 게임은 짜임새가 좋더라도 유저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묻혀버린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을 받아온 거대 프랜차이즈 게임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플랫포머 게임의 최고봉이라고 칭송받는 슈퍼 마리오 시리즈는 ds판부터 지적받았던 신선함 부족을 극복하지 못해

 

3ds, wii u에 이르러서는 각각 78점, 84점이라는 메타 스코어에 그쳤다.

 

그리고 마리오 시리즈는 '슈퍼 마리오 오딧세이'가 나오기 전까지 짧은 암흑기(?)를 겪었다.

 

소닉은 망했다.

 

록맨도 마이티 넘버 9 망하니깐 8년 만에 평타 치는 신작 하나 내고 계속 추억팔이 컬렉션만 내는 중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2010년대 초반, 스퀘어에닉스의 암흑기를 이끌었던 망한 파판 삼총사. (이미지 출처 : 메타크리틱) 

JRPG 장르에서도 '식상함'의 문제는 커다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턴제 전투 시스템, 거기서 거기인 스토리, 개성 없는 캐릭터, 자유도가 적거나 일방향적인 맵 등등...

 

과거에는 성공의 열쇠였던 요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패의 요인으로 변모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2010년대 초반까지 그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어떻게든 최고의 그래픽과 새로운 특징을 부가해 재미를 살린 턴제 전투 시스템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출시하는 게임마다 족족 망하며 시리즈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10년 전 출시작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온라인 MMORPG(구파판14), 그래픽만 좋고 나머지는 구닥다리인 게임(13-2), 그 게임의 후속작(라이트닝 리턴즈 13).

 

 

다행히 파판14는 리뉴얼 패치가 대성공을 거두며 부활에 성공했지만, 시리즈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는 15의 대성공이 반드시 요구되었다.

 

이를 위해 시리즈 최대 규모의 제작비를 들여 10년간 담금질한 끝에 출시한 블록버스터급 게임, 파이널 판타지 15.

 

 

별 관심 없었는데 1년 전에 플스4 산 기념으로 파판10 리마스터 사러 갔다가 만오천원엔가 팔길래 얼씨구나 하고 질렀다ㅎㅎ

 

그리고 책장에 박아놨다가 얼마 전에 문득 생각나서 엔딩까지 밀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도입, 소비자와 게임사 간의 윈-윈 전략을 세우다!

파이널판타지15는 '본편이 흥하면 반응에 따라 새로운 DLC나 미디어믹스를 출시한다'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출시 전부터 영화, 애니메이션, 스핀오프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게임의 부가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을 시도했다.

 

여기에 게임 출시 후 조연들의 이야기에 대해 다루는 DLC만 총 네 편이 출시되었다.

 

게임을 메인으로 한 본격적인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이야기의 분배)는

 

아마도 파이널 판타지 15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다양한 미디어믹스 중 단 하나라도 챙겨보지 않으면

 

스토리를 1도 이해할 수 없도록 게임 본편을 만듦으로써,

 

게이머들이 반드시 애니와 영화, 그리고 DLC를 접하도록 설계했다.

 

어째서 주인공의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했는지는 구글 플레이 무비에서 구매해 볼 수 있는 영화를 통해,

 

여행을 다니는 주인공 일행이 왜 친한지에 대해서는 한 편당 12분짜리 애니메이션 다섯 편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동료들은 게임 중간에 다양한 이유로 파티에서 이탈하게 되는데,

 

다시 파티에 합류한 이후에도 이탈한 동안의 이야기는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DLC 세 편을 구매해야 한다.

 

 

덕분에 게임 본편이 2만원대까지 덤핑이 되었을지언정, 게임을 100% 이해하기 위해서는 DLC와 영화를 구매해야 하므로

 

결국 게임사는 게임이 출시된 지 3년이 넘은 오늘날까지도 풀 프라이스의 가격에 게임을 판매 중인 셈이다.

 

라이트 게이머들은 게임 본편만 사서 '우와 그래픽 좋다~ 전투도 재밌어!'하다 말 테고

 

코어 게이머들은 모든 DLC와 영화 애니를 전부 본 끝에 '흑흑 스토리 짱이잖아'하며 만족할 테고

 

스퀘어에닉스는 게임이 덤핑 된 오늘날까지 로ㅡ얄 에디션과 DLC로 풀프값을 챙겨가고 있으니

 

모두가 만족하는 윈-윈 그림이 나온 것이다.

 

 

#진지한 이야기는 필요한 만큼만, 그 외에는 즐거운 모험을!

스토리의 완성도 면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는 파이널 판타지 10.

파이널판타지12와 13은 모두 심오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게임 CD 한 장에 방대한 메시지를 넣는 데 실패함으로써 서사 측면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한편 가장 마지막으로 '스토리가 좋다'는 평을 받았던 파이널 판타지 10은 진지함과 가벼움의 완급조절에 성공한 게임이기도 했다.

 

'마치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기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겹고 동양미 넘치는 세상을 여행하고,

 

그 과정에서 차츰 세상의 진실을 깨달아 스토리에 무게감을 더함으로써 더욱 몰입하게 만든 끝에

 

결국 최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세상의 구원과 피할 수 없는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여정에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15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그리고 너무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원치 않는 오늘날의 게이머들을 위해.

 

파이널 판타지 15는 무거운 스토리는 필요한 만큼만 넣고, 그 외에는 10대 후반 청년들의 즐거운 여행으로 가득 채워놨다.

 

 

부친이 출타하고 자기네 나라가 망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굴러가도 빵 터지는 사춘기이다.

 

왕자로서 짊어진 무게에 괴로워하다가도 금세 맛난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며,

 

속으로는 자신이 과연 고귀한 혈통의 동료들과 어울릴까 갈등하면서도 겉으로는 하루에 수십 번씩 셔터를 눌러대며 추억을 남긴다.

 

자기네 나라를 멸망시킨 적국의 재상일지라도 자기네를 도와주면 경계심 없이 그대로 따라간다.

 

 

30대가 되었음에도 보이밴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그들의 모습에서 순수함이 아닌 광기가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치환하자면 이제 겨우 대학교를 다니거나 사회에 첫 발을 딛었을 나이에

 

부모를 잃고 나라를 잃고 모든 것을 잃었으니, 갑작스레 몰려오는 거대한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기제가 발동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동 심리학의 거장 안나 프로이트는 큰 충격을 받은 개인이 유아 퇴행적 모습을 보이는 현상에 대해

 

"개인이 곤경에 처했을 때 좀 더 안전하고 즐거웠던 초기 발달단계로 후퇴하거나 유아기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불안을 완화시킨다"고 말했다.

 

어쩌면 주인공 일행은 그저 극복할 수 없는 슬픔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나이 30이 다 되도록 보이밴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며 인생즐겜을 시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희극으로 보였던 이야기가, 어쩌면 커다란 비극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최고의 그래픽, 역시 '파이널 판타지'

눈밭을 걸어가는 오프닝 씬은 파이널 판타지 6을 플레이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는 다른 프랜차이즈 RPG 게임들과는 달리 각 시리즈 간의 공통점이 거의 없지만,

 

'최고의 그래픽을 자랑한다'는 점 하나만큼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스토리 면에서 나쁜 평을 받았던 12, 13 또한 그래픽만큼은 동 세대 게임 중 최고라는 평을 받았으며,

 

특히 파이널 판타지 6는 슈퍼 패미콤 게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도트 그래픽으로

 

26년 전 전 세계의 중붕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로부터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파이널 판타지는 여전히 최고의 그래픽이 강점인 게임이다.

 

특히나 파이널 판타지 15는 그동안 3d 파판 시리즈에서 고수해 왔던 '일방향 진행'을 버리고 오픈 월드 게임으로서 탄생했기 때문에,

 

여행길 도중 이목을 끄는 곳에 모두 직접 가볼 수 있어 '친구들과 여행하며 완성하는 파이널 판타지'의 색채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래픽이 좋아져서 그런지 주인공 일행의 외모도 묘하게 현실적으로 변해서

 

헤어스타일은 파판7 시절 그대로인데 외모만 고등학교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비주얼이다 보니

 

가끔은 괴리감도 느껴진다.

 

하루가 바쁘다 하고 달라지는 기술의 발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15편 만에 벗어 던진 턴제 전투

구파판14를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고치던 와중에도 결국 포기하지 않았던 턴제 전투.

 

그간 스피어 시스템, 조디악 잡 등의 개성 있고 복잡한 부가 시스템을 추가해가며 꿋꿋이 유지해왔던 전투 시스템이었지만,

 

15에서는 이를 과감히 포기하였다.

 

개인적으로 다크 소울도 튜토리얼 직후 마을에서 헤매다가 접은 똥손 중의 똥손이라 액션 게임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파판15의 전투는 정말 조금의 불만도 없이 즐거웠다.

 

 

이번에 출시되는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의 전투 시스템도 파판15랑 비슷한 모양인데

 

젊은 게이머들은 별말 없고 나이 좀 먹은 게이머 중에서는 턴제 전투 돌려달라며 곡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보니

 

참 복잡미묘한 감정이 든다...

 

 

게임을 전부 클리어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 심오한 스토리, 일방향 진행, 턴제 전투 등 JRPG의 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는 요소들을 거의 대부분 포기했다.

 

작은 성공이 아닌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제작 기간만 자그마치 10년이 걸렸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나온 게임의 꼬락서니를 보니 파이널 판타지 16은 아마도 2030년 즈음, 혹은 그 이후에 나올 것 같다.

 

JRPG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들이라면 후속작이 요원한 전설의 JRPG 시리즈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혜자박스 라이브를 결제하고 모든 DLC가 전부 포함되어 있는 파판15 로얄 에디션을 플레이해보는 것은 어떨까?